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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Lifestyle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김창희 전 대우증권 사장님

by Retireconomist 2011. 7. 1.

대우증권 김창희 사장님

[김창희(金昌熙) 전 대우증권 사장. 1937년 4월 10일 ~ 2011년 6월 28일]


김창희 전 대우증권 사장님은 저에겐 참 스승이셨습니다. 아버님처럼 피할 수 없이 존경하던 분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핏대'라는 별명으로 '버럭'하시면서 큰 소리로 화를 내시곤 했습니다. 제가 대우증권에 입사할 때 직접 면접을 보셨었고, 제가 부장이 되기 직전까지 변함없이 사장님 자리를 이으셨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오랜 기간 사장님이셨습니다. 저에게도 김사장님과의 특별한 기억이 있었습니다. 사규에도 없이 입사 24개월만에 저 혼자 '대리'로 파격 진급을 결정하셨던 적이 있는데 (아직도 저는 그 사유를 모릅니다. 앞으로도 그 이유를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김사장님의 결정이셨다는 후문만 알게 되었지요. 이후에는 증권업계에 최초의 마케팅팀을 신설하시는 조직 개편에 일개 지점의 브로커였던 저를 '마케팅팀장'으로 천거해 주셨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 인사발령으로 많은 분들로부터 미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가고 싶어하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전혀 거론 대상에도 들지 않았던 저를 그 자리에 직접 쓰겼던 것이지요. 입사 후 10년 쯤 지났을 때, 면접장에서 저에게 여쭈어보셨던 질문을 다시 기억해 내시면서 흐믓한 표정을 지으셨었습니다. 그 모습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이렇듯 김사장님께서는 제 인생에 있어서 저를 인정해주시고 제 앞길에 아주 큰 영향을 주신 분이셨습니다.

'핏대' 김사장님은 저의 지금이 있도록 가르쳐주신 스승이었고, 이끌어주신 아버님이셨습니다. 저의 큰 스승과 큰 아버님이셨던 '핏대' 김사장님을 '당분간' 뵐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늘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보도자료--

김창희(金昌熙) 前 대우증권 사장이 지난 28일 밤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1937년 서울에서 출생한 고인은 경기고와 1961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대한증권을 시작으로 한국증권거래소, 한국투자개발공사, 한국증권금융을 거쳐 1973년 대우증권의 전신인 동양증권에 입사했다. 1984년부터 1999년까지 16년간 대우증권 사장을 역임하면서, 과감한 일처리와 추진력으로 고속 성장을 이끌며 대우증권을 증권업계1위로 올려놨다.

재임기간중인 1984년에 증권업계 최초로 동경과 뉴욕에 해외사무소를 설립해 해외 개척에 나섰고 국내 최초의 외국인 전용펀드인 코리아펀드를 설립해 글로벌자본의 국내 주식시장 유입을 도왔다.

대우증권 사장 당시 증권업협회 부회장, 증시안정기금 대표이사장, 코리아펀드 부회장, 상장사협의회 부회장 등의 직을 수행했으며, 퇴임 후에는 대우증권 퇴직 임원들의 모임인 '큰산회' 회장을 지냈다.

재무부장관 표창을 비롯 저축의 날 은탑산업훈장 등을 수상한 바 있으며 저서로는 '2천년대를 향한 성장산업과 기업경영전략'이 있다.

유족은 부인 양현덕씨, 장남 기원(아즈텍시스템 대표)과 차남 기영(대우증권 경영관리부 이사). 빈소는 서울 삼성의료원 17호실이며 발인은 7월1일 오전 8시30분, 장지는 성남 영생원 소망동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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