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다. 일본 열도 전체가 ‘2007년 문제’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뒤숭숭한 것이다. 2007년이 오면 달력에 표시된 정해진 휴일처럼 피할 수 없이 진행되는 일이라는 필연적인 문제였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다가오면 사회, 경제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는 두려움을 ‘2007년 문제’라는 함축된 단어로 정리한 것이다. 마치 영화 ‘딥임펙트’와 같았다. 물론 전 일본사회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온통 관심과 노력을 집중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에 출생하고 평생직장을 다니던 단카이 세대의 1차년도 1947년생들의 집단 은퇴 문제였던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은퇴자 대량 발생으로 인한 수입원의 감소나 노후 준비 미흡에 따른 가족 파괴와 같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를 인식하는 본질과 내용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조금은 다른 차원이었다.
‘2007년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고민한 주체가 본인도 가족도 아닌 기업주들이었다. 기업주들이 고민의 주체가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과연 후배들이 전부 다 전수했을까하는 고민에 빠진 것이다. 일본도 우리네와 다를 바 없이 고속 성장을 한 나라이기도 하고, 세계 경제 2위에 도달할 정도의 당시 상황으로 보면 단카이 세대 첫 은퇴자들은 바로 일본 경제 성장의 중심 세력이었고, 그 성장에 대한 모든 노하우가 빼곡히 담겨진 세대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노하우 집단이 은퇴할 경우, 아무리 문서화작업을 통해 공유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사내 훈련을 통해서 전수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수십 년 동안 현장에서 쌓은 개인별 노하우를 어찌 모두 기업에서 받아서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두 번째는 단카이 세대의 은퇴이후 다른 회사에 재취업할 경우 기업이 가지고 있던 노하우가 유출되는 최악의 경쟁 악화 상황이 발생될 것에 대한 우려가 남아있었다. 물론 정보 유출시 이에 대한 법적 대응을 비롯한 사전 보완 작업을 단단히 해두었겠지만, 설계도 유출 같은 형식화된 노하우 유출이야 불가능하다하더라도 이외의 노하우는 어떻게하면 가져가지 못하게 할까를 고민한 것이다. 아군이 적군으로 바뀌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세 번째는 노후 인력의 유출인 것이다. 여기에서 노후는 노후(老朽)가 아닌 노후(Know-Who)를 말한다. 업무 현장에서 30년 이상을 보내면서 끈끈하게 맺어진 인적 네트워크가 후임자에게 동반해서 인사시켜준 것만으로 그간의 네트워크만큼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기업주가 걱정할 만한 중요 인력 유출에 대한 걱정이 충분히 담겨진 대목이다.
현재 한국의 상황을 돌아보면 가히 ‘2010년 쇼크’라고 말하고 싶다. 2010년은 베이비붐 세대 중에서 첫 해에 해당하는 연령이 55세가 되는 해이고, 그들이 집단으로 은퇴하는 시기이다. 그것에 대한 준비가 공감대 형성이 너무 부족해서 ‘2010년 문제’가 아닌‘ 2010년 쇼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일본과 같이 모든 인력이 같은 해에 일률적으로 은퇴하지는 않지만,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관련해서는 2010년이 가장 상징성 높은 해임에는 분명하다.
‘2010년 쇼크’로 인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은퇴자들의 노하우(Know-How)와 노후(Know-Who)를 과연 기업에서 심각하게 생각하는 가에 있다.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고도성장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중추 세대인데도 말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신입사원들에게 ‘인재를 소중히 하는 기업 이미지’를 부각시키기에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붓는다. 그렇다면 나이가 먹었다는 이유로 노하우와 노후가 있는 인력을 시간적 불가침 요소를 빌미로 무작정 외부에 방출하면서, 과연 인재를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맞는가 말이다. 그리고 노하우와 노후를 기업에 남겨두도록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한 검증차원에서의 걱정은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사회,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우리 시니어들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와 노후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는가 하는 것이다. 거기에 수십 년 동안 사회활동을 통해서 얻어진 경험과 경륜을 과연 적절하게 이 사회가 활용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쇼크’라는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
그들에게 ‘일벌레’, ‘워커홀릭'(workaholic)’의 칭호는 훈장처럼 여겨졌던 세대이다. 일에 대한 열정은 M세대로 불리는 신세대와는 차원이 다른 잠재 능력을 가진 세대이다. 직장생활의 출발도 요즈음 세대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보다 ‘나를 써주는 회사’에 적성과 특성에 관계없이 입사해서 자기희생으로 일을 배우고 가정을 일군 세대이다. 그들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열정과 자기희생을 가지고 있는 세대이다. 그 시니어 은퇴자들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나 노후가 전혀 활용되지 않는 ‘써주니 고마워할 자리’를 만들어주고 그것만도 감지덕지하라고 밀어내는 것은 가혹한 발상이 아닐까.
일본의 ‘2007년 문제’는 기업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Y2K문제로 전 세계가 들썩일 때, 철저한 대비로 무사히 불행에서 벗어난 것처럼, 일본도 ‘2007년 문제’를 재고용과 정년연장 그리고 철저한 전수 프로그램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우리네 ‘2010년 쇼크’는 은퇴자 본인들에게 걱정거리를 확인시켜 줄 것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 스스로가 나서서 수십 년 쌓아온 노하우와 노후를 어떻게 더 적극적이고 장기적으로 활용하여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으로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고, 사회도 역시 단순히 숫자와 성과에 급급한 일자리 창출에 치우칠 것이 아니라, 수십 년이 지나야 쌓이는 현명하고 깊이 있는 노하우와 노후를 가진 시니어 은퇴 세대를 잘 활용할 방도를 찾는 것이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고 사회적 복지 실현을 이루는 초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양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노인 한 분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도서관 한 채가 불타는 것과 같다.’ 시니어 은퇴자들을 노하우(Know-How)와 노후(Know-Who)의 결정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형래 (주)시니어파트너즈 상무. COO (hr.kim@yourstag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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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김형래가 작성한 것으로 조선닷컴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newsplu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7/19/20100719006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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