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문씨는 올해로 70세를 맞는다. 그는 70세를 이르는 ‘예부터 드물었다’는 뜻의 ‘고희(古稀)’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희는 두보(杜甫)의 시 ‘곡강이수(曲江二首)’ 중 ‘술 외상은 보통 가는 곳마다 있으니 흔하지만, 사람이 70세까지 사는 것은 예전부터 드물다(酒債尋常行處有, 人生七十古來稀라)’에서 ‘고(古) 자’와 ‘희(稀) 자’만 써서 ‘고희(古稀)’를 만들어 70세로 대신 쓴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흔해진 70세를 ‘고희’로 부름은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내 나이가 ‘종심(從心)’입니다”라고 즐겨 쓴다. 공자(孔子)가 <논어> ‘위정편(爲政篇)’에서 “나이 70이 되니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도(道)에 어그러지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그는 ‘종심’을 맞아 사회에 무언가를 이바지하기로 마음먹었다. 올해 그 일이 구체화됐다. 바로 ‘궁궐문화연구회’를 비영리 민간단체(NPO)로 신청하는 것이다.
문씨가 처음부터 비영리 민간단체를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시니어가 즐겨 찾는 온라인 사이트 유어스테이지(www.yourstage.com)에서 역사 칼럼을 즐겨 보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두 편씩 게재되는 글을 기다리는 게 감질나서 글쓴이와 직접 만났다.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역사에 관심 있는 시니어가 의외로 많음을 알게 됐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인터넷 카페 ‘일조의 궁궐이야기’를 만들었다. 역사를 좋아하는 시니어가 온라인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함께 토론하고, 때로는 답사도 하면서 교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햇수로 6년이 넘게 진행되다 보니 회원 수가 500명이 넘었고, 매달 한두 번 진행하는 ‘역사 강좌’에 참여하는 회원을 감당할 만한 강의장을 찾는 것도 힘들 지경이 되었다. 게다가 역사에 조예가 깊은 회원은 스스로 문화재지킴이 또는 문화유산해설사로 활동하거나 문화유산 보호와 홍보하는 등의 문화 활동 사업을 전개하고 싶어 하고,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 단체와 연대 활동을 하는 기회를 갖고 싶어 하는 회원도 제법 많았다. 이런저런 생각은 많지만 적극 나서서 추진하는 이가 없었다. 이에 ‘종심’ 문씨가 중심이 되어 비영리 민간단체를 꾸리기 위해 좀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비영리 민간단체는 어디에 등록해야 하는가?
문씨가 운영하고자 하는 비영리 단체는 ‘비영리단체지원법’에 근거한다. 안전행정부 시행 비영리단체지원법은 ‘비영리 단체의 자발적 활동을 보장하고 건전한 민간단체로의 성장을 지원함으로써 비영리 단체의 공익 활동 증진과 민주 사회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법에서 정한 요건은 ‘사업의 직접 수혜자가 불특정 다수일 것, 구성원 상호 간에 이익 분배를 하지 아니할 것, 사실상 특정 정당 또는 선출직 후보를 지지·지원할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거나 특정 종교의 교리 전파를 주된 목적으로 설립·운영하지 아니할 것, 상시 구성원 수가 100인 이상일 것, 최근 1년 이상의 공익 활동 실적이 있을 것, 법인이 아닌 단체일 경우에는 대표자 또는 관리인이 있을 것’ 등 여섯 요건을 갖추면 등록할 수 있다. 이 법이 정한 지원을 받고자 하는 비영리 단체는 그의 주된 공익 활동을 주관하는 주무장관, 특별시장, 광역시장 또는 도지사에게 신청해야 하고, 등록 신청을 받은 주무장관이나 시도지사는 단체의 등록을 허가해야 한다. 이에 따라 등록된 경우에는 관보 또는 공보에 게재하고 안전행정부장관에 통지하도록 되어 있다. 모든 비영리 민간단체는 안전행정부에 집결되는 셈이다.
비영리 민간단체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비영리 민간단체는 시민사회의 급격한 성장과 민간단체 공익 활동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베이비부머 세대의 퇴직이 진행되면서 크게 확대됐다. 전문 지식을 갖추고,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들이 자신의 역량을 단체를 통해 좀 더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 민간단체로는 ‘사단법인 희망도레미’가 있다. 전문직 시니어의 새로운 롤모델을 지향하는 이 단체는 금융 회사 지점장과 임원, 제조 대기업 공장장, 고위직, 공기업 고위 간부, 민간 회사 대표 등 경력이 다양한 이들이 영세 자영업자에게 ‘소액신용대출(Micro Credit)’ 관련 사업과 경영 컨설팅을 하고 소액의 수수료를 받는 일을 시작했다. 영세 자영업자에게 창업 전 타당성 검토, 현장 실사, 심사, 사업자 교육 등을 하고, 창업 후에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도록 관리도 한다. 소상공인진흥원에서 정한 자영업 컨설팅 기관으로 지정되었으며 전문 컨설턴트를 12명이나 보유하고 있다. 이와 연계해 영세 자영업자의 영업 활동에 필요한 교육 및 강사 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현재 희망도레미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180여 기관의 영세 자영업자를 돕고 있다. 물론 현장에서 상담한 곳도 700여 개에 이른다. 이 희망도레미뿐 아니라 전국 비영리 민간단체 약 1만 곳이 사회적 공헌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개인적인 재능 기부 활동이 비영리 민간단체로 확산되다
프로 보노(Pro Bono)는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가 없는 개인이나 단체에 보수를 받지 않고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을 말한다. 주로 저소득층이나 형사 사건을 맡는다. 라틴어 문구인 ‘공익을 위하여(Pro Bono Publico)’의 약어다. 미국 변호사협회 윤리규정에는 변호사들이 1년에 최소 50시간을 프로 보노 활동에 참여할 것을 권장하는 내용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법연수원 1학년 여름방학 기간에 법률 봉사 활동을 하는데, 공공 또는 사회단체에서 2~4주간 무료 법률 상담 활동을 한다. 구청, 법률구조공단, 노동 단체, 소비자 단체 등에서 방문자, 전화 상담, 인터넷 상담을 한다. 그러나 재능이 있어도 기부할 곳이 마땅치 않거나 찾을 수 없다면 사장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그들의 재능을 모아 사회에 공헌하자는 의미로 단체를 결성하는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았나. 기부할 재능을 개인이 활용하는 것보다는 조직화된 체계라면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판단이 민간단체 결성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비영리 민간단체를 결성하는 데 걸림돌은 무엇일까?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단체 설립 이전에 설립할 법인의 목적 및 명칭, 정관 작성, 기관 구성, 창립 총회 등을 준비해야 한다.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 신청을 하려면 최소 1년간 활동한 내용이 있어야 한다. 제출 서류에 전년도 사업 계획, 수지 예산서, 전년도 결산서를 첨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전년도 총회 회의록도 있어야 한다. 주무 관청에 따라 단체 등록 여부가 결정되므로 목적이 명확해야 하고, 이미 등록된 단체와 명칭이 중복돼도 안 되기 때문에 사전에 점검해야 한다. 이처럼 독자성, 전문성, 비영리성, 합법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등록해야 한다. 재정 문제도 명확히 해야 한다. 비용과 관련해 운영 계획을 철저하게 수립한다. 첫째, 운영 자금은 구성원 회비, 자발적 기부금이 원천이 된다. 사업 목적이 뚜렷하고 공감적 공헌 활동일수록 기부금이 늘어난다. 충성 회원이 많을수록 회비도 많이 각출된다. 비용을 줄이는 방법 중 가장 큰 건 인건비다. 저비용 고급 인재를 구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미국 NPO는 인터넷을 이용해 공개적으로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정보 기술의 혁신이 인력 수급에도 크게 이바지한다. 프로그램 개발, 사업 계획서 작성, 컴퓨터 디자인, 목공 등 구인 조건을 홈페이지에 올려 해당 분야에 경험이 있는 이가 재능을 기부하도록 한다. 공공기관의 보조금과 출연금, 자산 운용 수익과 자체 사업 수익으로 운영하는 데까지는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음을 참작해야 한다.
안전행정부는 지난 1월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 활동 지원 사업 시행을 공고했다. 2월 말까지 온라인으로 신청서를 작성, 제출해야 하는데, 올 지원 과제는 총 6가지 분야다. 사회 통합과 취약 계층 복지 증진(지역·계층 간 갈등 해소, 노인·아동·장애인 등 취약계층 복지 지원 등), 선진 시민 의식 함양(건전한 사이버 문화 조성, 자살 예방, 도덕성 함양, 법 질서 지키기 등), 민생 경제 및 문화 발전(신기술·글로벌 창업 지원, 전통문화 계승·발전, 한류 확산 등), 환경 보전과 자원 절약(친환경 실천 캠페인, 에너지·자원 절약 생활화, 생활 쓰레기 줄이기 등), 국가 안보 및 안전 문화(국가 안보 및 평화 통일 기반 구축, 4대악 근절, 재해·재난 예방 등), 국제 교류 협력(국제적 기아·빈곤 퇴치, 국제 문화 교류, 지구 온난화 공동 대응 등) 등으로 되어 있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확인한 문씨는 오히려 자신감을 되찾았다.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하면 ‘궁궐문화연구회’가 전통문화 계승 발전과 한류 확산에 기여할 수 있고, 관련 지원 사업에 도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시 올해 실패하면 어쩔까 하는 불안감은 전혀없다. 지금까지도 지원 없이 자생적으로 잘해왔고 지혜와 경험이 많은 시니어의 협력이 건재하며, 내년에 다시 신청해도 되기 때문이다. 모 금융사에서 조사한 퇴직 후 하고 싶은 일 가운데 10명 중 한 명꼴로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고 싶다는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이런 지원군도 계속 입성할 것이니 든든하기까지 하다.
글 김형래(시니어 칼럼니스트ㆍ시니어파트너즈 상무, <어느 날 갑자기 포스트부머가 되었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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