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시니어(78세)는 요즘 매주 금요일 오후면 친구 집에 들러 연하장(年賀狀)을 만드느라 바쁘다. 젊은 시절부터 초등학교 교사로 친분을 맺은 친구와 연하장을 만들기로 마음을 모은 것은 팔순을 앞두고 새해를 맞는 감회가 점점 남다르고 그간 인연을 맺어온 이에게 감사와 축원의 마음을 잊지 않고 담아 보내자는 뜻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주소만 적어서 보낼 수 있는 연하장도 있지만, 기성품이라는 게 왠지 정성이 덜한 것처럼 보이는 데다 시간 여유도 있으니 소싯적 학생 가르치던 기억을 더듬어 한지로 연하장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시니어가 연하장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 까닭은 바로 그들이 ‘동방예의지국’에서 성장했고, 그를 몸소 실천해 온몸에 밴 ‘계절 인사’를 해야 하는 의무감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연하장 역사를 일제 강점기에 시행된 우편 제도 도입의 시기와 맞추려는 이가 있으나 이는 아주 잘못된 시각이다. 오히려 우편 제도가 미풍양속으로 전해 내려오던 연하장 역사를 단절시킨 것이라고 정리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그만큼 우리네 ‘계절 인사’는 오래된 아름다운 풍속이었다.
직접 인사를 드리지 않고 연하장으로 대신하는 것은 결례가 아니었다
예의를 중시하는 조선 시대에는 연하 문화가 융성했다. 연말연시에 직접 찾아가 인사를 드리거나 직접 찾아가 인사드리지 못할 처지면 아랫사람을 시켜 문안을 묻는 서찰을 보내곤 했다. 남자가 보내는 문안 서찰은 요즘의 방명록처럼 이름을 적을 수 있도록 만든 공책인 세장(歲帳)에 이름을 적거나, 서찰을 받는 사람에 대한 예를 표현하기 위해 서찰을 칠기 또는 자기로 만든 세함(歲銜)에 넣어 보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낙네는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니 대신 문안을 다니는 문안비(問安婢)를 두어 곱게 차려입히고 손에는 인사장을 넣은 단지를 들려 인사드려야 할 어른을 찾아뵙도록 했다.
단지 안에는 ‘소동파의 재주를 갖추길 기원합니다’라는 의미의 ‘소재(蘇才)’, ‘곽자의처럼 부자가 되시길 바랍니다’라는 뜻의 ‘곽복(郭福)’, ‘중국의 왕희처럼 자녀 복을 누리세요’라는 기원으로 ‘희자(姬子)’, ‘팽조처럼 3,000년 장수를 누리세요’라는 축원으로 ‘팽수(彭壽)’라는 글 등을 적어 넣어 집안 상황에 맞는 것을 하나씩 꺼내어 전달하도록 했다. 예나 지금이나 지혜, 부와 자녀 그리고 장수 같은 축복 말이 자주 쓰는 문안 인사였다.
우리네 연하장은 맞춤식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했다
옛 문안 기록을 보면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만 들추며 서로 축하하는 문구로 맞춤식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새해엔 크게 평안하시오”라거나 “아들은 보시오”, “벼슬에 나아가시오”, “병환이 없기를”, “돈 많이 버시오” 등의 말로 각기 상대방이 바라는 사항으로 문안을 나눈 것으로 적혀 있다. 그것을 그대로 연하장에 적어 보내면 큰 어려움이 없을 터이고, 축전이 일반화된 시기부터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 문안이 확산되지 않았나 싶다.
연하장에 쓰인 소재로는 사군자와 붉게 떠오르는 태양, 각각의 해를 상징하는 12지신(十二支神) 중 그해를 맞이하는 동물이나 복주머니 같은 전통 문양이 단골이었다. 전 국민이 기억하는 ‘밝아오는 새해에는 풍성한 기쁨 속에 뜻하신 모든 일이 성취되기를 기원합니다’ 또는 ‘성탄과 새해를 맞이하여 지난해 보살펴주신 후의에 감사드립니다. 건강과 행운이 늘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등의 문구는 성의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연하장은 나라마다 다르기에 그 나라의 예절과 문화의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유독 연하장을 많이 쓰는 이웃 나라 일본의 연하장 문화는 우리네와 많이 다르다. 그들 문화에서 연하장을 보내지 않는다는 건 앞으로 인연을 끊겠다는 세속적 평판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아 서로 명함을 나눈 지인에게는 의무적으로 연하장을 쓰곤 한다. 중국에서 연하장은 10세기에 등장한 것으로 보는데, 길이 6m에 하인 6명이 운반할 정도로 엄청나게 큰 연하장도 있었다고 한다.
서양은 고대 이집트에서 파피루스에 인사말을 적어 보낸 것이 시초라고 전해진다. 근세에 접어들어 독일에서는 아기 예수 그림과 신년 축하 문구를 동판으로 찍은 카드를 널리 활용했는데, 프랑스에서는 명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연하장 주고받는 걸 금해서 새해 방문 인사로 대체되다 1870년대 그림엽서로 부활했다고 한다. 한편 1822년 미국 워싱턴 시 우체국장은 연말연시에 우편 카드 업무가 폭증하자 우편으로 카드 보내는 것을 금해달라는 청원을 국회에 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크리스마스카드를 주고받으며 크리스마스와 신년 인사를 겸해 인쇄하는 걸 허용했다. 홍봉화 경희사이버대학교 디지털미디어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카드와 연하장은 1990년 2억 7,000만 통에서 96년에는 5,900만 통으로 급격히 줄었고, 2006년에는 그 절반으로 줄어 3,000만 통 내외’라고 밝혔다.
카톡과 문자 등 편리한 디지털 문명 시대에 연하장이 필요한 이유
첫째, 사람이 전하는 연하장은 특별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즈니스 스쿨에서 성공적인 대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비결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고들 한다. 그래도 하나를 꼽는다면 ‘손 글씨로 감사 편지를 쓰는 것’이라고 한다. 기계와 디지털에 대한 의존이 심화된 세상에서 남이 하지 않는 방식은 더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만큼 특별한 인사법이다.
둘째, 손 글씨가 담긴 연하장은 그 자체가 예술품이다.
육필 원고는 그 자체로 세계에서 유일하고 독창적이다. 더구나 그 수고의 과정을 손으로 아름답게 한다면 그 가치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혹시 투박하다면 질그릇과 같을 것이고 세련되었다면 청자 같지 않을까. 정성을 가득 담았다면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담겨 있을것이다. 그 어떤 연하장이든 단지 이름만 손 글씨로 썼더라도 그것은 이 시대의 유일한 예술품이다.
셋째, 연하장은 두고두고 볼 수 있는 시간을 담고 있다.
이름까지 인쇄된 연하장과 분명히 구분되어 자리를 잡을 것이다. 아마 새싹이 내뿜는 연두색으로 창가가 물들 때까지 가장 밝은 자리에 연하장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다음 해에 받는 연하장이 겹쳐질 때까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비길 수 없는 시간을 담은 귀한 선물로 받아들일 것이다.
세계 주요국 지인들에게 연하장을 보내보자
일본의 지인에게는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 좋다. 세로로 쓰는 것이 일반적인데,
첫 줄에는 ‘あ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또는 ‘謹賀新年(근하신년)’으로 새해를 축하하는 말을 쓰고,
둘째 줄에는 ‘今年も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올해도 잘 부탁합니다.)’ 등의 인사말을 적고,
셋째 줄에는 날짜를 적는다.
중국 지인에게는 보내는 연하장에는 가장 많이 쓰이는 인사말은 ‘希望新年万事如意(새해에 모든 일이 뜻하는 대로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또는 ‘希望在新年里好, 幸福(새해에도 행운과 행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라는 문안을 사용하면 큰 문제는 없다.
그 외 나라의 인사말은 어떻게 쓸까? 직접 찾아보는 것 또한 재미 아닐까.
권 시니어와 동년배 친구, 두 분의 여성 시니어가 옹기종기 모여 한 달 동안 만든 연하장은 모두 100여 장. 연하장이란 설 전에 보내는 것이 예의라지만 속설에 불과하고 축원이야 연례 행사니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준비된 연하장을 넓게 펼쳐 보니 거실 바닥이 모자랄 지경이다. 우체국에서 우표 값도 알아보고 어떤 우표가 적당할지 모양도 골라 정할 계획이다.
시니어에게 연하장이란 아날로그 진공관이 만들어낸 그윽하고 묵직한음장처럼 깊이 있고 숨결이 담겨야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 김형래(시니어 칼럼니스트ㆍ전 시니어파트너즈 상무, <어느 날 갑자기 포스트부머가 되었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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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ior 골든라이프-27]
본 칼럼은 김형래가 작성한 것으로 국민은행 GOLD & WISE 2014년 11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omoney.kbstar.com/quics?page=C017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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