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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Column

[행복한 인생 2막-05] 가치 있게 나이 먹는 길, 배움 [GOLD & WISE] 3월호

by Retireconomist 2012. 3. 1.

 ‘난 젊어서부터 머리가 나빴어’ 또는 ‘이제 머리 쓰는 일은 질색이야’라고 두뇌의 명석 정도를 빌미로 배움을 회피하는 시니어도 있지만, 머리가 좋고 나쁨은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역사상 아이큐(IQ)가 가장 높은 이(IQ 228)로 공식 기록된 미국인 마릴린 보스 사방(Marilyn vos Savant)도 “공부는 나이나 IQ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꾸준히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그녀의 칼럼에 쓰고 있다.

은퇴한 화학박사, 역사 공부로 삶의 활력소를 찾다

수요일 이른 아침 화학박사로 퇴임한 K박사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바쁜 걸음으로 한남동 언덕에 위치한 L미술관 로비로 들어섰다. 먼저 온 다른 시니어들과 아주 반갑게 한 사람 한 사람 깊이 허리를 숙이며 악수를 나눈다. 악수하는 손짓에서 아주 친한 사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K박사는 운니동에 위치한 D평생교육원에도 학생으로 등록해서 매주 목요일 ‘동양사’를 3년째 듣고 있다.

“나는 평생 실험실에서 한 우물만 깊이 파면서 정년까지 살아왔어. 그런데 퇴직할 때가 되어 돌아보니 내 인생이 너무 단조로웠다는 것을 느꼈어. 퇴직한 후에는 나의 세계를 넓히면서 좀 더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다른 길도 걸어보고 싶었던 거지. 배운다는 것은 긴장감과 흥미로운 미래를 동시에 주거든. 바로 삶의 목적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 난 역사를 고등학교 때 엉터리로 배운 게 전부였어.항상 그것이 나에겐 풀어야 할 숙제였지. 그래서 ‘역사를 배우자’고 결심했어.” 옆에 있던 한 여성 시니어가 “치매에는 공부가 최고야. 치매는 머리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거든. 공부란 녀석은 머리에 기름을 치는 셈이니, 머리가 잘 돌아가게 해주지. 공부하는 사람에겐 치매가 없어” 하면서 자신 있게 말을 거든다. 또 한 시니어가 끼어들면서 “공부하러 나오면 얼마나 대접받는다고…. 말벗도 사귀고, 갈 곳도 생기고, 거기에다 얼마나 건전하고 근사해? 아들 며느리 보기에도 떳떳하고.” 정말 현실적인 얘기가 이어진다.

“내가 1997년인가? 대학에서 학회장으로 일하면서 독일 학회에 초청을 받아서 갔을 때 본 자료가 기억나는군. 독일의 한 경제연구소가 1,000개의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98% 직원이 평생교육에 관심이 있고, 75%가 자기 계발이나 재취업을 위해 평생교육을 받고 있다는 거야. 퇴직을 바로 앞둔 때라 아주 인상 깊었어. 우리나라도 요즘 시니어 공부 열풍이 불었어.” 늘 가르치기만 하던 K박사는 이제 현장 실습 나온 학생이 되어 조교수의 지시에 따라 다른 평생교육원 학생들과 줄을 지어 미술관 관람실로 입장했다. 이렇게 K박사는 다시 학생으로 돌아와 소풍 떠나는 아이처럼 들뜨고 환한 미소로 공부하는 재미에 빠졌다.

공부에 빠진 시니어들, 무엇을 왜 공부할까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K박사와 같이 자기 계발 등의 내재적 동기에 의한 학습을 꼽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 경험과 학습 경험을 바탕으로 재능기부나 교육 기부 같은 활동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예비적 성격의 학습을 들 수 있고, 마지막으로 재취업을 통해 소득 창출을 도모하기 위한 학습이 있다.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자기 계발을 위해 공부하는 것에는 이른바 학위나 과정을 이수하는 형식의 교육 프로그램 참여자가 대부분인데, 그중 44%는 대학교, 24.9%는 대학원, 18%는 방송통신대학교로 나타났다. 또 비형식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 중 25.6%는 스포츠 강좌, 25.5%는 직무 능력 향상 교육과정, 7.1%는 자격증인증과정 순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과거에는 문자 해득 교육이 진행됐지만, 최근에는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직업 능력 향상 교육과 경제 경영 강좌, 펀드 및 재무 설계 부동산 과정, 정보 인터넷 소양 교육, 자연생태 강좌, 역사 철학 강좌 등 인문 교양 교육, 악기를 다루거나 그림을 그리고, 서예를 하는 등의 문화 예술 교육, 시민 참여 교육 강좌와 수영이나 헬스 등의 스포츠 강좌 그리고 간병인, 금연 교육 등의 건강 및 의료 강좌 등 그 범위나 종류가 다양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무척 넓다. 가까이 볼 수 있는 유통업체의 문화센터에서만도 지난 2010년 한 해 동안 2만 7,303개의 프로그램이 운영되었고, 23만 6,890명이 학습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시니어가 아직도 모르는 것이 그렇게 많을까? 정보통신의 발달뿐 아니라 지식의 축적과 활용 속도가 빠르다 보니, 생활 자체가 학습을 거치지 않으면 ‘불편’하게 변하는 것을 몸으로 눈으로 느끼고 있다. 3버튼, 즉 전원, 볼륨, 채널만 누르면 틀림없이 반응하던 TV가 이제는 컴퓨터 키보드를 앞에 두어야 하는 스마트TV시대로 바뀌었고, 손자 손녀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문자 메시지만으로는 부족해 트위터나 페이스북까지 배워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특히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 인터넷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빠른 정보의 습득 이외에 문화, 오락, 친구와의 교류 등 다양한 활동의 무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외부 정보에 대해서 쉽게 소외될 수 있는 은퇴자에게는 꼭 필요한 생활 도구가 되었다. 인터넷 검색창에 ‘평생교육’이라는 단어만 쳐도 검색 결과가 수십 페이지에 이르고, 이를 보아도 전국 어디서나 대한민국 시니어들이 공부에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배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잘 살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고, 공부한다는 것은 진취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며, 나 자신을 가장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임을 웅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을 시니어들이 가장 잘 간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시니어들은 과연 어떻게 공부를 할까?

시니어를 위한 공부 프로그램 중 흥미로운 곳을 소개하면 ‘평생교육 속에 모험(Adventure in Lifelong Learning)’이라는 슬로건으로 55세 이상 시니어를 위한 세계 최대의 교육 및 여행 지원 비영리 기관 ‘길이 곧 스승(www.roadscholar.org)’이 있다. 본사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 있는데, ‘길이 곧 스승’은 매년 전 세계 2,000여 곳에서 30만 명의 참가자를 모은다. 보통은 자신이 선택한 캠퍼스를 중심으로 일정을 짜고, 학교 기숙사에 머무르면서 학생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캠퍼스 생활을 경험한다. 단지 시험, 숙제 같은 정규 학생이 가질 부담을 주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학력에 관계없이 참여할 수 있다. ‘길이 곧 스승’이 예정된 국제 프로그램 중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는 것 하나를 살펴보자. ‘열차와 양쯔 강 배를 타면서 중국 공부’ 프로그램이 있다. 2012년 5월 7일 출발해서 6월 1일 도착한다. 참가비는 4,858달러. 24일간 숙박을 제공하고 아침 24번, 점심 22번, 저녁 24번을 제공하고, 전문가 강의 9번, 견학 3번, 현장 경험 24번 그리고 공연 6번이 포함되어 있다.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과 달리 전문가가 이끄는 현장 답사 형태를 유지하면서 좀 더 가까이 중국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긴 여행을 잘하려면 건강 상태도 공부하려는 마음가짐도 함께 준비되어야 마무리까지 동행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여러 프로그램이 이 시간 세계 어디에서인가 진행되고 있다. 공부에 뛰어들려는 시니어들이여, 이렇게 새로운 세상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글 김형래(시니어 칼럼니스트·시니어 파트너즈 상무, <나는 치사(致仕)하게 은퇴하고 싶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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