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카이 세대다. 1947년 즉 쇼와 22년생 돼지띠이며 금년 안에 만 60살이 된다. [단카이 세대] 라고 부르게 된 건, 30년 전에 사카이야 다이치상(境屋太一)이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고 쓴 소설의 제목으로, 지질학 용어에서 발생한 거대한 인구 덩어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편의점, 자동차, 은행, 관청 같은 선단(先端)에 있는 업계를 무대로 하여, 현재 세대가 잉여 소모품에 고통 받고 있는 모습을, 각 연대별로 나타내고 있어서, 사실을 정확히 알아맞힌 만큼 서글프기 짝이 없다.
그렇다 해서, 단카이 세대가 이렇게 한 통으로 묶여서 취급을 당하는 건 한심한 이야기지만 나의 중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렇게 크지도 않은 사립중학교였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학년 한 학급이 54, 55명으로 16반이나 있었으니까, 확실히 맞혔다고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 책에서 쓴 것같이, 버블 경제를 만들어낸 후 망하듯이, 격렬한 수험과 취업,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경쟁사회를 통과한 후에, 눈사태같이 무너지더니, 2007년 현재 대량의 정년퇴직자를 양산하게 되었다. 하며 새삼스럽게 소동은 피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와중에 있는 당사자 입장에서 본다면, 특별히 새로운 현상도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전쟁 베이비붐 세대로 불려 오면서, 이미 오랜 옛날부터 그러한 자각증상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나 자신도, 수년 전부터 자신의 나이를 예민하게 느끼기 시작했고, 곧 닥쳐올 정년퇴직과 앞날의 이런저런 일에 대해서, 신물이 나있던 참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리다 끝나는 종소리를 들으며, 이제 자네는 볼일이 끝났어 하는 냉정한 표정의 배웅을 받으며,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사라져 간다면, 너무 쓸쓸하고 비참하다. 또한 그 한편에선, 잠시 멀어져 있었던 경쟁과 투쟁 속으로 당장 일자리를 찾으러 돌아다니지 않으면 안 된다. 당연히 저축도 없으니까, 계속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생각했다. 정년을 앞둔 2년 전, 즉 58살로 지금의 일을 그만 두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아슬아슬하게나마 간신히, 저 녀석은 아직 능력이 있는데 아깝다 하는 소리를 들으며 몸을 뺄 수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재취업도 아직은 길이 좁지 않을 것이다. 그 때는 60살 이후까지 근무할 수 있는 직장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다행이라고 할지 불행이라고 할지, 나는 지금까지 이성획득 경쟁에서 패배를 계속한 탓에 아직은 독신이며, 연로한 부모를 돌보는 역할도 끝나서, 현재 유행하는 고령자 독거노인 생활을 하고 있다. 나에게 필요한 도움조차 기대할 수가 없지만, 그 대신에, 내 생활에 방해가 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실제로 내 계획은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왜 지금 그만 두느냐고 놀랐고, 아직은 필요한 사람인데 갑자기 사라진다며 아쉬워하는 소리를 뒤로 하며 떠날 때의 이 쾌감. 그만둔 후의 여운마저 느끼며 다소는 혼자 싱글거리며 기뻐했다.
그런데 의도는 금방 빗나갔다. 아무 것에도 속박되지 않는 시간이라는 것이, 그렇게 즐겁지 만은 않았다. 이 시간만큼은 잠깐이라도 행복을 맛보며, 천천히 여유롭게 재취업의 길을 찾아보자 생각하여, 고용보험을 받으며 인터넷상의 직업소개소의 구인난을 탐색하는 날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렇다 할만한 것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게다가 현대 사회는 정체를 모르는 직업이 많다. 스타일리스트, 플래너, 디자이너, 코디네이터, 무슨 어시스턴트, 스텝같은…..그리고 요즘 세태를 반영했는지, 간병인과 휴대전화 판매원이 너무 많다. 간병인은 자격증이 필요하고, 이제 곧 간병을 받아야 할 처지의 내가 할만한 일자리는 아니다. 휴대전화 분야는 주로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이런 직업이 구직자에 대한 구인난의 비율을 지탱해 준다고 한다면, 우리들 연령대의 사람들이 견딜만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정규사원이라고 하는 건, 모두 정년이 60살이다. 남은 길은 파견이나 아르바이트 혹은 파트타임이다. 아니면 경비원이나 교통지도원 정도이다. 아니면 생활을 유지하려고 생각한다면 이종면허를 취득하여 택시 운전기사 정도가 만만하다.
그러던 중에, 약간 특이한 것이 눈에 띄었다. 승려 견습. 월급 12만엔이 낮은 급여이긴 하지만 주 5일 근무에 숙식 제공이겠지. 그렇다면 이것이라도…..하고 자세히 보니, 60살이 정년이라고 한다. 승려에게 왜 정년이 필요한 가.
그럭저럭하는 중에 날짜만 지나가고, 나도 금방 59살이 되고 말았다. 이 59살이라고 하는 나이는 아주 어중간해서, 새로운 취업을 하기에는 너무 늦고, 그렇다고 해서 정년후의 그것도 아니니까, 고용하는 입장에서도 주저하게 된다. 시험 삼아, 65살까지 재고용 연장을 하는 직장에 응모를 했더니 적어도 55살 정도에서 근무를 시작하여, 그 후의 연장을 말하는 것이라고 거절당했다. 그건 그렇다. 내가 경영자라도 그렇게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 결국 2007년 현재, 단카이 세대의 정년퇴직자의 한 사람이라고 하는, 명백한 상황에 처해져 버렸다. 그래도 극히 최근에, 겨우 하나를 발견했다. 촉탁. 더구나 이건 행정기관의 방침에 따라 중 고령자를 우선으로 채용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촉탁인 이상, 매년 계약을 갱신하여 상여금은 없지만, 당연히 60살 정년은 없다. 바로 응모를 해서 면접을 보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앞의 소설의 서두에서는, 이런 문장이 쓰여져 있었다.
예전에 하이틴으로 부르며 젊다고 했던 그 [단카이 세대]는, 과거에 그랬던 것같이 미래에도 수많은 유행과 수요를 만들며, 과당경쟁과 과잉시설을 남기며, 늙어갈 것이다. 하지만 늙은 시점에서 끝나는 건 아니다. 아직 연금과 병원과 장례식장과 묘지의 쟁탈전과 과잉화가 남아있다.
이렇게 된 나는, 같은 년대의 인간이 거의 멸종하는 100살까지 살아 남아서, 그 때의 사회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똑똑히 지켜본 후에, 최대한 있는 힘을 다해서 큰소리로 소리친 후에 사라져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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