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뒤돌아보지 말자
[방이 깨끗이 비워졌다. 이제 또 다른 학생이 머물 수 있도록 준비되었다.]
'데이빗' 어저씨로부터 마지막 칭찬을 받았다. 학생 떠나면 청소하는데 2~3일은 걸렸는데, 이렇게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떠나니 일거리가 줄었다는 것이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진정 멋진 사람.
이게 왠일인가? 시카고 공항이 폐쇄되었단다. 일기 문제 때문인지, 공항 안전상의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일정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항직원이 권하는 얘기는 내일 이시간에 떠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서 오늘과 똑같은 일정으로 시카고에서 인천 가는 비행기도 이곳에서 예약해 주겠다는 것이다. 옆에서 얘기를 듣던 '데이빗' 아저씨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헨리, 하루 더 우리 집에서 묶고 떠나는 것이 어때?"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손을 가로로 저으며 "감사합니다만, 월요일 회사에 출근해야 합니다. 꼭!" 대답을 마치자 마자, 공항직원에게 매달리다시피 다른 길이라도 일요일 밤에 서울에 도착할 수 있도록 표를 구해달라고 했다.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 가족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에 '데이빗'의 친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조그만 시골 공항에 사람들이 밀려들기 시작하니 항공사 직원도 어찌할 바를 모르며 소리쳐 설명하기에 바쁜 지경이 되었다. 마침 토요일이고, 단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까지 들이닥치기 시작하니 북새통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조금은 밉상이겠지만, 자리를 옮기지 않고 끈질기게 부탁을 했다. 가족과 빨리 만나고 싶으니 "표를 연결해달라."는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새롭게 구상한 비행기 여정을 보여주었다. 시카고를 지나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 여정은 총 19시간인데, 시카고를 통하지 않고 가는 여정은 총 24시간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다섯시간과 24시간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그래서 오마하 --> 시카고 --> 인천의 항로를 오마하 --> 댈러스 --> 나리타 --> 인천행으로의 변경 노선을 감사하게 받았다.
짐가방 하나는 모두 책을 담았더니 무게가 40kg에 육박했으나, 내용물이 책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항공사 직원은 추가비용을 받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순수하게 받아주니 고마울 따름.
['시카고' 공항의 폐쇄로 비행경로를 바꾸어야만 했으니]
오마하에서 8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로 댈러스 공항에 10시 5분에 도착하고 2시간 뒤인 낮 12시 5분에 댈러스를 떠나서 3월 6일 일요일 날짜선을 지나서 일요일 오후 4시 30분에 도착한다. 다시 2시간 10분을 기다려서 저녁 6시 40분에 인천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고 오후 9시30분에 대한민국에 도착한다.
짐표 두 장을 달랑 받고 내 손은 가벼워졌다. 수명 다한 가방을 버리고, $40짜리 배낭을 샀는데, 등에 메니 익숙하질 않다. 하지만 이제 떠날 준비는 다 끝났다.
[홈스테이 '데이빗' 아저씨와 '코니' 아줌마와 마지막 사진]
울고 또 우는 '코니' 아줌마를 겨우 달래고 찍은 마지막 사진. 4월에 우리 미국 본사에서 컨벤션이 있고, 그때 또 올 것이니 그리워 말고, 그때 방이나 비워달라는 농담을 하면서 겨우 달랬다. '오마하 스테이크' 오마하에 도착하면 처음 만나는 가장 상징적인 문구이자, 대표 상품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넥타이는 '내브레스카 대학의 공식 '메브릭스' 넥타이이고, 왼쪽 가슴 위에 단 흰색 뱃지는 '오마하'시 홍보 배지로 '레이' 교수가 나에게 준 선물이다. '오마하를 선전해 주세요~.
아무튼 나를 위해 항상 가족처럼 돌보아 주신 두 분께 깊은 긴 포옹으로 작별 인사를 마쳤다. 이젠 정말 우리 가족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간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가슴 한가운데 뜨거운 덩어리가 목으로 타고 올라왔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느냐고 말로는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몸을 틀어 승강장으로 향했다. 열 걸음쯤 갔을까? 다시 뒤를 돌아다 보니, 여전히 두 분은 나를 향해서 손을 흔들고 계셨다. 나는 돌아가시라는 신호를 보내듯 손을 밀쳐내듯 흔들고는 검색대열로 빨려 들어갔다.
만남은 어색하지만, 헤어짐은 이토록 쓰리다는 것을 새삼.
검색 대열에 서자 나는 다시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집에 잘 도착하는 것이 나의 마지막 미션.
아니나 다를까. 오마하 공항에서는 전신 엑스레이로 철저한 보안검색을 진행했다. 살벌한 분위기에 소지품을 하나 하나 불쾌하듯이 확인을 받고는 댈라스로 향하는 승강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댈서스 공항의 안내표와 공항내 교통수단인 스카이 링크]
[댈러스 공항의 구두닦이 아가씨. 의자가 제법 근사하다. ]
혼자서 24시간을 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음식을 줄 때 마다 사진을 찍어서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놀이가 되었다.
[댈러스에서 나라타까지의 비행기에서 기내식. ★★★☆☆ ]
[일본 나리타에서 인천 공항까지 비행기에서 기내식 ★★☆☆☆]
대체로 좁은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자다가 밥 먹고, 잠깐 잡지보다 잠들고 24시간을 거의 갇힌 것처럼 있다 보니, 곤죽이 되어서 맛의 감각을 잊을 지경이다.
[스마트 폰에서도 뭐가 제일 무서우냐? 했더니, 죽는 것보다 내 돈 없어지는 것이 더 무섭다. 돈이 뭔지?]
귀국길에서도 제일 눈에 뜨이는 것도 은퇴 관련 뉴스와 눈에 띄이는 것은 같은 내용. 그런데 은퇴에 대한 이슈가 미국에서도 자주 나오는 주요사항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티타에서 인천까지 비행기에서 특별히 준비한 음식이라고 안내문을 따로 준다.]
집 가까이 오니 지루하다는 생각이 싹 가셨다. 가족들이 어떤 모습을 나를 맞이할까? 인천공항에서 전철을 타고 집에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리무진 버스를 타면 얼마나 걸릴까? 마음이 설레이기 시작한다.
[인천공항까지 마중 나온 가족과의 사진. 아내는 수줍어했다. 이날 사진사는 어머니]
이제 내가 할 일은 배운 것을 유용하게 하나 하나 실천하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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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 아저씨의 도전] 후기
제가 57일간 전혀 입도 떼지 못하던 영어 실력으로 떠밀리듯 미국의 대학에서 한 과정을 그것도 아주 좋은 성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것이 돌아보면 지금도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단 하나 '그 분'께서 인도해 주셨다는 것만 확실합니다.
제일 먼저 사장님의 용단이 없으셨다면 저는 미국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감사드립니다. 동료의 배려가 없었다면 맘 놓고 몰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늘 응원해주시는 '상급생'가 계셨기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격려의 글을 써주신 어머니, 무한 신뢰로 조용히 나를 응원한 아내 그리고 제가 없는 동안 복잡한 입학과정을 묵묵히 엄마와 상의해서 경제학과 대학생이 된 아들, 그리고 가끔 문자메시지로 격려해 준 딸. 사랑합니다.
오마하에서도 홈인스테드시니어케어 본사 직원들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고, 오마하 한인 장로교회 이 목사님을 비롯한 교인 여러분이 믿음의 성(城)을 높여주셨습니다. '에드퀸' 주임교수와 '레이' 교수, '메리팻' 교수 그리고 '애싱거' 교수가 나의 지식에 파이프가 되어주셨고, 학사 운영에 '케이트' 그리고 대학교에서 일하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홈스테이 가족,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바들' 그리고 '코니' 할머니의 손녀 '케이' '코니' 할머니의 따님 가족들, '데이빗' 아저씨와 그의 친인척들. '카스' 거리 동네 분들, 그리고 기업 방문 시 친절했던 여러분 모두 내게는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귀국 후 그간의 사진을 정리하고 사진첩을 만들어서 '코니' 아줌마에게 발송했습니다. 저에겐 제2의 고향이 오마하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연락을 드리면서 지내려고 합니다.
교과 내용은 혹시 '저작권'에 해당할까 유학기에서 제외하였습니다. 그러나 실무에 유용한 학습이었기에 필요한 것들은 꼭 활용할 예정입니다. 물론 저는 학위를 받지는 않았지만 내브레스카 대학의 동문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같이 공부했던 '차우', '이바타', '다치로', '오스틴' 그리고 '셉'과도 계속 연락하면서 지낼 생각입니다. 페이스북에서 종종 만나고 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친구가 나의 뻔한 영어실력으로 '놀다 온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나의 대답과 이와 관련해서 공개적으로 지금까지 밝히지 않은 사실이 있습니다. 모든 수업을 녹음해서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복습을 꼭 했습니다. 그것이 비결이었습니다. 물론 녹음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떤 불이익이 돌아올 줄 모르겠으나, 복습하기 위해서 모든 과정과 과목별로 시간마다 녹음했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에 가서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반복해서 수업 내용을 이해가 갈 때까지 들었습니다. 그것이 비밀이었고 비결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쉰 살 아저씨도 된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고, 제가 한 것처럼 누구라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저는 건강했고 콧물감기 하나 걸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떠날 때부터 이렇게 사진과 글을 통해서 그간의 생활을 남기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나의 두 아이에게 보여줄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유어스테이지닷컴(www.yourstage.com)'에 고정 난을 주셔서 오히려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탈자와 맞춤법에 맞지 않는 표현에 대해서는 연재가 끝나더라고 지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회차에 따라 기복도 심하고 내용도 많이 다른 점은 저의 내공이 많이 부족한 탓이니 이해 부탁합니다. 그간 재미없는 개인적인 일상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시작하면서 누군가 읽어줄까 하는 의심을 하지 않고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읽어주실 것으로 믿었던 분이 계십니다. 바로 '어머니'입니다. 마침 연재를 마친 다음 날인 내일이 스물두번째 결혼기념일입니다.
어머니와 아내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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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에 미국 유학 다녀오기 차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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