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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사(士)'는 "무사(武士)'를 뜻한다. [사무라이]

by Retireconomist 2004. 11. 21.
벚꽃과 사무라이가 야마토 다마시이(大和魂)나 군국주의 이념으로 변하게 된 것은 쇼와 10년께(1930년대)부터의 일이라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왜곡 날조 되지 않은 순수한 무사도의 이미지와 그 정신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일단 20세기 초 세계에 널리 읽힌 니토베 이나조의 고전 ‘사무라이’부터 검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 5000엔짜리 지폐에 그 초상화가 그려져 있을 정도로 국가적 인물로 추앙 받는 니토베는 도쿄 대학을 거쳐 미국의 존슨홉킨스 대학과 독일의 본 대학에서 수학한 수재였다. 국제연맹 사무차장을 역임한 그는 1905년 미국의 중재로 일본에 유리하게 러일전쟁을 마무리하는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는 1899년 미국에서 영어로 ‘사무라이’(원제 BUSHIDO-The Soul of Japan)란 책을 썼다. 일본의 무사도(武士道)와 일본인의 모럴을 확고히 한 이 책은 영어판 외에도 독일어, 불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 17개국에 번역되어 서양에서 일본 정신을 이해하는 교과서로 읽혀졌다.

일본인들은 창의력은 별로 없어도 이미 있는 것을 임기응변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응용술은 뛰어나다. 그러니 영어로 말하면 invention(발명)이 아니라 innovation (개발)에 강한 셈이다. 일본이 자랑하는 사무라이 정신, 그것이야말로 이미 있는 것을 근대에 새롭게 개발한 이념이랄 수 있다. 일본인들의 전통 문화에 깔려 있는 무상과 같은 선(禪) 사상이나 자살문화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건너간 주자학이나 불교 문화도 고루 그 내면에 깔려 있다.

사무라이 정신을 대변하는 덕목으로서 의(義), 용기(勇氣), 인(仁), 예(禮儀), 명예(名譽), 극기(克己), 그리고 비장한 죽음, 할복(割腹) 문화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무사도를 유럽문화의 기사도와 비교하고 있는 해박한 지식 그리고 문학적 표현 속에 담긴 질서 정연한 논리는 이 책이 단순한 무사도의 소개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니토베는 무사도를 힘의 집단이나 무력주의가 아니라 동양의 교양주의에 접목시킴으로써 19세기 말 문명개화에 열을 올려 엄청난 속도로 서구 문명을 흡수하고 있었던 풍조 속에서도 일본과 동양정신의 굳은 심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책의 저변에 깔려 있는 사무라이 정신, 무사도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는 바로 군국주의 일본의 행보를 가늠케 하는 전체주의 이념의 씨앗을 품고 있다.

니토베가 이 책을 통해 전달하는 사항은 일본 무사도의 기원 및 연원이며, 그 희생정신과 교훈, 그리고 사무라이 정신이 일본 대중에게 미친 감화이며, 그 감화의 지속성과 영속성이다. 그에 따르면 사무라이 정신은 일본 국민의 아름다운 이상이자 종교와도 같다. 인간의 삶에 대한 본연의 자세, 사고방식 등 무엇 하나 무사도에서 영향을 받지 않은 게 없었다. “무사는 일본의 꽃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근원이기도 했다”는 그의 말대로 “지적인 일본, 혹은 도덕적인 일본은 직·간접적으로 무사도에 의해 완성되었다.” 사무라이 정신의 가장 기본은 주군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이다. 그 정신을 아우르며 감싸는 탐미적인 비장함에 쉬 현혹될 수 있지만, 살펴보면 대의에 모든 가치가 우선되어지는 파시즘의 정서가 이미 그 안에 내포되어 있다.

23세의 젊은 나이에 아들과 남편을 여의고 여승이 되었던 시인 지요죠(千代女)의 하이쿠가 실려 있는 것을 보면 짐작이 간다. 이미 죽은 아이를 생각하며 “잠자리 잡으러 너 오늘은 어디까지 갔느냐”는 처절한 정서를 사무라이 정신을 말하는 자리에서 일본인의 정서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책에 담긴 “사라지지 않을 일본의 혼으로서의 사무라이 정신”이 일본 군국주의 군부의 도덕적 토대가 되고, 오늘날까지 일본 우익의 정신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반면 교과서의 구실을 하기도 한다. 평화주의자 니토베는 말한다. “한반도와 만주에서 우리를 승리의 길로 이끌어준 것은 우리 마음 속에 살아 숨쉬는 조상들의 영혼이었다. … 매우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일본인이라도 표피를 벗겨보면 거기에 무사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어찌 할 수 없는 일본인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일본은 사무라이의 나라에서 상인의 나라 근로자의 나라로 바뀌었다. 에도(江戶) 시대에는 ‘사무라이(무사)의 날’이 있었다. 11(十一)을 종서(縱書)하면 선비 ‘사(士)’처럼 보인다. 일본에서는 ‘사’라고 하면 ‘문사(文士)’가 아니라 ‘무사(武士)’를 뜻한다. 그래서 11월 11일을 ‘사무라이의 날’로 정했던 것이다. 같은 한자의 士자를 놓고서도 한쪽은 선비로 다른 한쪽은 사무라이로 읽은 두 얼굴의 한자문화권의 앞날을 점치기 위해서도 우리는 니토베의 무사도를 펼쳐봐야 할 것이다.

[사무라이 | 니토베 이나조 지음 | 양경미 권만규 옮김 | 생각의 나무 | 1만95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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