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강연회에 초청받아 다니면서 가장 많은 호응을 받는 주제가 있다. '크루즈 여행 다녀온 부부의 파경 위기' 얘기다. 크루즈 하니 여행 중에서는 백미라고 일컫는 최고급 준비 중에 하나인데, 무슨 파경이라니? 흉측하고 험악한 내용인 것 같아 궁금해 하면서 수강자들이 잔뜩 집중하는 내용이다.
내용은 이렇다. 은퇴 준비를 착실히 마친 모범적인 H선배의 부부. 선배는 55년생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첫해에 태어난 그야말로 경쟁의 선두에서 헤쳐나온 역전의 용사. H선배는 B대기업에서 이사로 은퇴했다. 대기업에서 부장이 된다는 것은 동기 중에서 5%만이 가능한 자리이고, 이른바 임원이 된다는 것은 별을 따는 것과 같아서 H선배의 약진은 후배들에게 늘 부러운 미래 중에 하나였다. 직장생활도 순탄해서 같은 부서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영업에서 관리 그리고 임원까지 전문성을 인정받아 일은 고되고 자유로운 개인시간을 보내기 쉽지 않다고 해서 안타깝기는 했지만, 돈 쓸 시간이 없을 정도라서 노후 준비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H선배의 친구분들로부터 들었다. 물론 서울에 넓은 아파트도 장만하고 큰 딸은 대학을 졸업해서 직장에 다닌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들은 황혼이혼 같은 것은 꿈에도 꾸지 않을 아주 소문난 잉꼬부부.
은퇴 후의 생활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준비하면서 여유있고 풍족한 미래를 위해서 내핍하면서 검소한 생활을 보냈을게 분명하다. 동문회가 있으면 늘 늦게 도착해서 인사를 나누면 한 잔 정도에 취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 단정한 선배는 마냥 줄이고 아껴쓰자는 주의도 아니었다. 때에 따라서 동문회 모임에서 '골든벨'을 울리며 한 턱내는 기분도 내는 그런 멋진 분이었다.
[여행지 베니스에서 스쳐지나가듯 본 '크루즈' 선박, 워낙 커서 카메라 한 장에 들어오질 않았다. 사진 김형래]
은퇴하면 멋진 여행을 떠나자는 목표를 두었기에 소소한 불편은 충분히 감내하고 살았던 모양이다. 한 번은 은퇴 직전에 모인 동문회에서 '크루즈 여행' 얘기를 꺼내셨었다. 우리 후배는 침을 꼴깍 꼴깍 삼키면서 취중진담으로 집중하면서 들었던 H선배의 계획은 초미의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은퇴 여행지는 '크루즈 세계일주'. 매월 15만원씩 꼬박꼬박 10년간 저금했더니 '은퇴 여행자금' 3천만 원이 만들어졌단다. 은퇴준비 자금으로는 부족하지만, 은퇴를 기념하기 위한 여행자금으로는 충분하게 준비되었단다. 은퇴 10년전에 10년 후를 꿈꾸는 선견지명있는 준비는 처음 불입을 시작했을 때는 열심히 자료도 찾아보곤 했지만, 세상도 많이 변하고 여행비용도 많이 오를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은퇴 직전에 어렵사리 여행사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크루즈여행 상품을 고르기 시작했단다.
은퇴 전에도 이러 저러한 이유로 해외 여행을 여러번 경험한 바 있고, 그저 여러 곳을 점찍듯이 다녀오는 패키지 여행 프로그램에 신물이 났고, 기왕에 은퇴기념여행이니 색다르고 고품격의 상품을 골라야겠다고 처음부터 맘먹고 고르기 시작한터라 결정에 큰 망설임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선택기준으로 택한 것이 외국인 중심으로 승선하는 크루즈가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해외 여행지에서 눈살 찌푸리게하는 한국 여행객들과 동행할 때는 혼자서 따로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은 경험이 있었기에, '기왕이면 다홍치마'의 심정으로 고르고 또 골랐다는 것이다.
은퇴 후 '크루즈 여행'을 떠나는 H선배는 여전히 우리 관심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당연 동문회에서 H선배가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여행담을 들으러 쪼르르 모여든 형상이었지만, H선배는 '크루즈가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어 요즈음 살벌한 집안 분위기라며 애써 얘기를 거두려했다. 집요하게 묻는 후배들에게 충고어린 얘기를 꺼내놓았다.
"은퇴 준비를 돈 준비로만 착각해서는 안된다. 정말 아쉽다. 지금부터 은퇴 준비를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는 결론부터 끄집어 냈다. 남들이 생각도 못한 '은퇴 준비'를 10년 전부터 했고, 금전적으로 충분히 문제없음에도 불구하고 '은퇴 준비'가 부족하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크루즈' 여행을 들으면서 그 의문이 해소되었다. H선배 부부가 여행을 떠난 첫 날은 무척 설레고 행복했었단다. 호화로운 여객선에 산해진미의 뷔페를 즐기는 것은 10년의 착실한 준비가 담보한 행복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둘째날이 되면서 밤에 무도회가 열리는데 춤을 추기 위해서 필요한 '턱시도'도 '드레스'도 준비되지 않았고, '관광버스 춤' 정도의 실력으로는 절대로 무대에 올라설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인사정도 할 줄아는 '외국어'실력의 H선배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거나 식사 중에서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는 '외국인'들과 대화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H선배의 형수는 알뜰히 살림을 한 모범적인 가정주부였지만, '크루즈 여행'을 위해서는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3주간 두 부부만이 배에 갇힌 모양으로 망연히 수평선만을 바라보고 돌아온 격이니, 그 가치를 충분히 맛보지 못한 H선배와 형수의 갈등만 증폭되었다는 것이다.
"집에서 뭐했나? 크루즈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챙겼어야지?" 하는 H선배의 타박과 "밖에 나가서 더 넓은 세상과 만나는 당신이 뭐가 필요한 것인지 챙겼어야 하지 않았는가?"하는 형수의 반론이 팽팽히 맞선 모양이다.
크루즈 여행을 위해서 적금을 붓기 시작하는 때부터, 춤도 배우고, 외국어도 배우고, 은퇴 이후의 생활을 위해서 무엇인가 함께 준비되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년 공부해서 20년 직장생활하는데, 30년 은퇴를 위해서 배운 것이라고는 은퇴 전 1년동안 혼자서 전전긍긍했을 뿐이고, 고작해야 회사에서 1주일간 진행해 주었던 '프랜차이즈 창업과정' 설명회가 전부였다는 것이다.
은퇴 준비가 돈 준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 2011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돈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그 외의 어떤 준비가 필요하겠는가 하는 반문이 있겠지만, 은퇴 후의 삶은 돈으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선배들의 경험을 통해서 듣게 된다. 그리고 점점 더 배우고 경험한 선배들의 은퇴 얘기가 그 준비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이 국가나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은퇴해서 가족과 자신을 위해서 멋진 제2의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는 돈이 아닌 의미있고 하지 못했던 '버킷 리스트'를 실현하는 일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다.
돈 준비에만 촛점을 맞춘 은퇴 준비는 '금융회사'의 상품을 팔기 위한 전략일 뿐, 진정 그들의 은퇴 생활에 관심을 둔 행위는 아니다. 은퇴 준비를 돈 준비에만 촛점을 맞추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김형래
'칼럼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준비하는 재테크-065] 금융회사의 사회공헌 활동은 고객 경제교육부터 실시하는 것이 옳다 (0) | 2011.07.29 |
---|---|
[금융주의보-160] 금융회사의 사회공헌 활동은 고객 경제교육부터 실시하는 것이 옳다. (0) | 2011.07.27 |
[준비하는 재테크-064] 은퇴 준비를 돈 준비에만 촛점을 맞추어서는 안된다. (0) | 2011.07.21 |
[준비하는 재테크-063]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상조회사 영업직원이 있을까? (0) | 2011.07.15 |
[금융주의보-158]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상조회사의 영업직원이 있을까? (0) | 2011.07.13 |
[준비하는 재테크-062] 남편들이 아내에게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이유 (0) | 2011.07.11 |
[금융주의보-157] 남편들이 '젖은 낙엽'처럼 아내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한 가지 이유 (0) | 2011.07.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