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사1 '나는 치사하게 은퇴하고 싶다.'에 차마 담지 못했던 글의 일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고대의 귀중한 문서들을 기록한 것은 귀족이나 학자들이 아니라, 비바람 치는 초가 한 칸에서 언 손을 녹여가며 글을 쓰는 필사본 채식사들이었다. 중세의 전장에서 죽어간 이들은 기사나 군인들이 아니라 그들을 뒤따르던 종자와 하인들이었고, 민중의 혁명을 완성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여왕의 목을 자르는 일은 술 취한 망나니가 담당했고, 아프거나 다친 사람들은 마법사와 이발사들이 치료했다. 오늘날의 철도와 도로를 건설한 건 국가나 부르주아들이 아니라 집시처럼 떠돌던 일단의 부랑자들이었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고대든 중세든 현대든 문명은 절대로 유지될 수 없었고, 또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맨 처음 문명을 건설하고, 문명의 번성기에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천한 일로 문명의 밑바닥을 지탱한 것은, 이.. 2010. 10. 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