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크리스토퍼상’ 생물학자와 노인의학자의 심층 취재
‘블루존’의 노장들은 어떻게 질병과 치매 없이 100세까지 사는가
조시는 한층 깊게 사유를 이어나갔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스로를 안쓰럽게 여기기 마련일세.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는 거지. 하지만 그래서는 안 돼.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불행의 주요인이야.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집중하면 타인과 멀어지지. 사람이 오직 자신의 필요와 욕구에만 사로잡히면 불안하고 초조해진다네. 그걸 극복해야 해.”
“어떻게요?” 나는 양팔이 부러진 채 고군분투하다가 수시로 자기 연민에 빠지던 때를 떠올리며 조시에게 물었다.
“간단해. 스스로에게서 벗어나면 된다네. 그 시간에 타인에게 선을 베푸는 게 훨씬 낫지 않겠나. 다른 사람의 삶을 개선할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하게!”
_〈1부 - 즐거움보다 더 높은 목표〉 pp.41~42
100세를 넘긴 장수 노인은 대개 결단력이 뛰어나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것을 향해 똑바로 나아간다. 하지만 삶이 적응을 강제할 때는 유연한 사고로 변화를 수용한다. 또 그들은 쉽게 타인의 호감을 산다.
블루존 중 한 곳인 일본 오키나와에 사는 장수 노인을 묘사한 이 인용문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오랜 세월 잘 살아온 사람들은 의연하게 스스로의 길을 걷지만 삶이 주먹을 날리면 유연하게 공격에 대처한다. 우리는 적응력을 발휘해 자율성을 유지하는 노인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_〈1부 - 죽을 때까지 변화하기 위하여〉 p.61
“제가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두 가지 있어요. 은퇴하지 않는 것, 그리고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에요.” 밥은 강조했다. “무슨 일을 하든 계획을 세우세요. 계획을 적어놓고 한 번씩 확인하세요. 다 끝낸 일에는 줄을 그어서 표시하세요. 필요하다면 계획을 수정해도 좋아요. 되도록 체계적으로 일하세요.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일도 있어요. 두 번이나 파산했죠. 심각한 문제에 맞닥뜨린 적도 여러 번 있고요. 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았어요. 매번 방향을 살짝 틀어 길을 개척했죠. 그리고 저에게 중요한 가치, 제가 추구하는 신념을 찾아 다시 돌아왔어요.”
_〈1부 -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땐 페이지를 넘기면 그만〉 p.82
돈과 바버라는 두 달 후에 맞이할 여덟 번째 기념일을 준비하고 있다. 두 사람이 나누는 사랑이 배우자를 잃은 슬픔을 지우거나 상처가 아무는 시간을 단축한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새 슬픔은 두 사람의 인생에 녹아들어 삶에 풍부함과 감사를 더하고 있었다.
바버라 옆에 놓인 선반 위, 나무로 만든 정교한 매 조각상이 시선을 끌었다. 바버라가 내 눈빛을 알아채고 말을 꺼냈다. “참 아름답지요? 프랭크가 매를 참 좋아했거든요. 저 조각상을 보면 늘 프랭크가 생각나요.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프랭크가 제게 해준 말이 있어요. ‘삶에서 중요한 자산은 사랑과 시간, 오직 두 가지뿐이다. 시간과 사랑을 어디에 쓰는지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_〈2부 - 삶에서 중요한 건 사랑과 시간 두 가지뿐〉 pp.193~194
“매일 아침 저는 감사하며 눈을 떠요.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지 못하고 떠나야만 했던 영혼도 있으니까요.” 캐런이 이야기했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는 거예요. 다시 한번 타석에 나가 방망이를 휘두르죠. 언젠가는 홈런을 칠 거예요. 변화를 만들 힘이 남아있는 한, 저는 계속해서 노력할 거예요.”
_〈2부 -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온다〉 p.222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만으로도 스웨덴의 노인 복지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스웨덴은 사회적 결정 요인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가정 방문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중에서도 ‘시민의 수리공’이라는 서비스가 특히 인상 깊었다. 이들은 낙상 위험을 줄이기 위해 노인의 집을 방문해 커튼을 달거나 전구를 가는 등 집안일을 돕는다. 낙상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노인이라면 전구를 갈고 홈통을 청소하겠다고 직접 사다리에 오르지 않고 전화 한 통으로 간단하게 일을 대신해 줄 사람을 구할 수 있다. 게다가 비용은 전액 나라에서 부담한다.
_〈2부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p.242
나는 안식년을 가지는 동안 멋진 사람을 여럿 만났다. 캐나다 노바스코샤주에 자리한 댈하우지대학교Dalhousie University에서 근무하는 켄 록우드Ken Rockwood 박사 또한 그중 한 사람이었다. 록우드 박사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쇠약함에 접근했다. 박사는 쇠약함을 특정한 증상이 아닌 ‘결함의 축적’이라고 정의하고 ‘임상적 노쇠 점수’라는 기준을 개발해 ‘매우 건강함(원기 왕성하고, 활기차며, 의욕이 넘친다. 꾸준히 운동하며 동년배에서 가장 건강한 편에 속한다)’부터 ‘심각하게 쇠약함(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며 삶의 말기에 접어들었다. 사소한 질병조차 극복하지 못할 상태에 속한다)’까지 등급을 나누었다.
_〈3부 - 회복탄력성이 있는 사람은 빨리 늙지 않는다〉 p.310
살아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마시 코트렐 홀·엘리자베스 엑스트롬 지음|김한슬기 옮김|웨일북|372쪽|1만8500원
건강한 노년은 노화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미국 야생 생물학자 마시 코트렐 홀과 25년간 노령 환자 수백명을 치료한 노인의학 전문의 엘리자베스 엑스트롬이 함께 쓴 이 책은 말한다. “노화를 대하는 긍정적인 태도는 실제로 기대 수명을 7년까지 연장한다.”
침상에 누워 삶에 대한 회한에 잠기는 노인과, “내 삶에서 말년이 가장 행복하다” 말하는 노인의 차이는 무엇인가? 저자들은 이탈리아 사르데냐섬의 누오로, 그리스의 이카리아섬 등 인구의 상당수가 100세 이상으로 비교적 건강하게 장수하는 지역을 뜻하는 ‘블루 존(Blue Zone)’을 탐사하고, 행복하고 건강한 노년을 누리는 이들을 인터뷰해 답을 찾아나섰다.
행복한 노년은 거저 오지 않는다. 건강하고 행복한 80세는 수십년 전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린 노력의 결과물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행복의 40%는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고, 15%는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40%는 노력에 달려 있다.
저자가 인터뷰한 90대 할머니 릴리 코언은 홀로코스트로 가족·친지를 잃고, 아들을 백혈병으로 먼저 보냈다. 신경성 질환을 앓은 남편을 20년간 간병하는 등 갖은 인생의 고비를 넘겼다. 그는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저는 46세에 노화와 장수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미리 계획하려는 자세가 제일 중요해요. 노화 과정을 부정하는 것, 즉 쇠퇴와 상실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도움이 되지 않아요. 늙어가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일찍이 예상해 둬야 뭐든 계획을 세울 수 있으니까요.”
코언은 동년배 노인을 두 부류로 분류한다. ‘부정론자’와 ‘현실론자’. 부정론자는 지금껏 해온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고, 해내야 한다고 믿는다. 나이가 들며 신체와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건강이 악화되고 상실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아무런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 결과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한다. “반면 현실론자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요. 사건사고가 닥치기 전에 미리 일상을 바꾸는 방식으로 통제력을 유지해요. 아직 변화를 감당할 수 있을 때 개방적이지만 단호한 사고방식으로 생각을 실천에 옮기죠.”
행복한 노년을 위한 선결 조건 중 하나는 ‘자율성’이지만, 이는 ‘독립성’과는 다르다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자신의 건강 상태를 인지하고 가능한 범위 안에서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빨간불’이 켜지기 전에 운전을 그만두라. 사고가 나거나, 차를 긁거나, 새로운 병을 진단받거나, 건강이 악화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미리 대안이 될 만한 이동 방법을 찾아두라고 권하고 싶다.”
삶의 ‘목적성’ 역시 노년의 행복을 유지하는 중요한 버팀목이다. 손주를 돌보든, 정원을 가꾸든, 가족을 위해 요리하든, 다른 볼일을 보든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날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98세의 캘리그래피 작가 루실 피어스는 33년째 매주 한 번씩 캘리그래피 수업을 듣고 있다.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활동을 계속해야 합니다.”
많은 이가 노화를 삶의 특정한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라 여기지만 저자들은 지속되는 삶의 연장선상일 뿐이라 말한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걸어온 길에 노화라는 이름을 붙이고 계속 걸어갈 뿐이다. 노화는 젊음이 아니다. 그렇다고 늙음도 아니다. 노화는 굵은 주름이 새겨진 손을 담은 사진도 아니다. 노화란 더 포괄적인 개념이며, 오르락내리락하는 유동적인 선이다.”
책은 풍부한 사례를 통해 행복한 노년의 다양한 모습을 제시하며 설득력을 확보한다. 전문가들이 쓴 책이지만 인터뷰 형식을 차용한 덕에 지루하지 않다. 책장을 넘길수록 늙음을 긍정하고 노화에 대한 두려움을 덜게 된다.
유색인종 노인의 두뇌 건강 개선을 위한 단체에서 활동하는 70세 미국인 캐런 웰스는 말한다. “매일 아침 저는 감사하며 눈을 떠요.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지 못하고 떠나야만 했던 영혼도 있으니까요.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는 거예요. 다시 타석에 나가 방망이를 휘두르죠. 언젠가는 홈런을 칠 거예요. 변화를 만들 힘이 남아 있는 한, 저는 계속해서 노력할 거예요.” 원제 The Gift of A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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