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지자체·교육기관 강좌 늘어… 이미 정해져 있는 형식도 참고할 만
최근 몇 년 사이 지자체와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자서전 쓰기’ 강좌를 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자서전 만드는 일을 도와주는 실버산업 업체도 생겼다. 관심만 있다면 누구도 기록해주지 않는 ‘나만의 삶’을 글로 옮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막상 자서전을 쓰려고 하면 녹록지가 않다. 오랫동안 전문적으로 글쓰기를 해온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부터 난감하다. 본인이 재력가나 유명인이라면 대필 작가나 구술 작가를 섭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자서전을 제작하려면 집필에만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1000만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 출판 비용은 또 별도다. 평범한 노인에게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자체, 교육기관, 실버산업 회사에서 운영하는 ‘자서전 쓰기 과정’은 이보다는 저렴한 비용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많은 강좌 중 자서전 출간까지 책임질 수 있는 강좌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김형래 시니어파트너즈 상무는 “도처에 자서전 과정은 많지만 마지막에 책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최근에는 이북(e-book)이나 주문출판(POD)을 이용해 저렴한 비용으로 결과물까지 만들어주는 곳이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자서전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면 어떠한 내용을 채울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보통은 태어나서 현재까지 자신의 전 생애를 정리하는 자서전을 쓴다. 하지만 인생의 특정 부분 위주로 책을 쓸 수도 있다. 실향민 출신의 윤흥규씨(87)는 80여년의 인생 중 자신이 20대를 보낸 1950년대를 위주로 자서전을 썼다.
자서전 도와주는 실버산업 업체도
김 상무는 “아무래도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쓰는 것이 필자 입장에서 편할 수 있다. 자신의 노동운동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자서전 강좌를 찾았던 수강생도 있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자신의 생애 전체를 정리할 수 있을까.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면 이미 정해져 있는 형식을 참고해도 된다. 시니어파트너스 측은 자신들이 마련한 자서전 형식만 따라가도 원고지 200~300장 분량은 무난하게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수강자들은 일단 서문에 해당되는 ‘나는 누구인가’를 쓰게 된다. 추상적으로 쓰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쓰는 것이 좋다. 나의 외모는 어떠한지, 특징은 무엇이 있는지, 나의 취미생활과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적는다. 다른 수강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자서전 전체의 기본 방향을 설정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생애를 쓰기 전에 간략하게 자신의 생애를 연표로 만들어보는 것도 좋다. 자신의 직계가족(부모, 자식)의 인생 중 내 생애에 중요했던 부분이나 내게 영향을 준 사회적 사건을 연표에 추가하는 것도 좋다.
이제 본격적으로 인생 집필에 들어갈 차례다. 크게 사람의 인생은 5가지 주기(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나눠볼 수 있다. 각 생애 주기별로 기억에 남는 3~4가지 일들을 적는다. 각 사건에 대해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각 사건에서 나는 무엇을 느꼈는지를 적다 보면 200자 원고자 3~4장 분량이 금세 채워진다.
물론 더 많이 쓰고자 하는 부분이 있다면 분량을 늘려도 된다. 정명헌씨(68)의 경우 환갑 이후 많은 시련을 겪었다. 운영하던 조그만 사업체는 몰락했고, 아파트 재개발이 좌절되면서 많은 빚을 지게 됐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공사판을 전전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특별한 경험이 있는 사람의 경우 해당 인생 주기에 더 많은 사건들을 기록해도 된다.
자신의 생애를 모두 기록했다면 내게 영향을 준 주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적는다. 보통은 배우자, 형제자매, 자녀, 부모에 대한 글을 쓴다. 생애 주기별과 마찬가지로 각 인물에 대해 기억나는 점 3~4가지와 각각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쓰면 된다. 여기까지 과정을 마쳤다면 보통 원고지 200~300장 분량의 글이 완성된다고 한다.
시민단체가 시도하는 ‘구술 자서전’도
보다 정밀한 자서전을 완성하고 싶다면 1차 탈고 이후의 과정도 신경써야 한다. 자서전은 대부분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에 앞뒤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실제와는 다른 내용이 사실처럼 들어갈 수도 있다. 자서전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만나 자서전 내용을 고치고, 그 과정에서 내용을 추가할 수도 있다. 혹시라도 남겨둔 과거 기록이 있다면 더 좋다.
탈고가 끝났다면 책 말미에 끝맺음말과 기억할 만한 사진과 자료를 첨부하면 된다. 이북이나 주문출판은 페이지가 늘어나도 비용 부담이 크지 않기 때문에 수백 페이지가 넘는 자료, 사진을 첨부하는 경우도 있다. 내 책을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다면 표지와 제목, 목차까지 신경써서 살피면 더욱 좋다.
글을 쓰는 것이 부담되는 사람은 ‘구술 자서전’을 생각해볼 수 있다. 집필 자서전만큼 활성화는 되어 있지 않지만 일부 시민단체에서 ‘구술 자서전’을 시도하고 있다. 노년세대 노동조합을 표방하는 노년유니온은 노인층을 대상으로 한 구술 자서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노년유니온의 구술 자서전은 개인 자서전이라기보다는 집단 자서전에 가깝다. 구술 기록에 참여 중인 정순명씨(65)는 “몇 차례 구술을 진행하다 보니 자신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되게 나열해보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점에 놀랐다”며 구술 자서전도 집필 자서전만큼 활성화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구술을 통해 일생을 기록하고 싶다면 속 안에 있는 말을 모두 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며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람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이상 꾸준히 구술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정씨의 경우 안면은 없지만 심리적 거리는 멀지 않은 70대 초·중반 여성들의 생애를 주로 기록하고 있다.
자서전을 쓸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지금부터 틈틈이 일기를 써두는 것이 좋다. 윤흥규씨는 “내가 이리 오래 살면서 자서전까지 남길 줄 알았다면 젊었을 때부터 일지를 만들어놨을 것이다. 기록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기억으로만 쓰려고 하니 많은 내용을 쓰지 못한 것이 참 아쉽다”고 말했다.
조선시대의 자서전
과거에도 개인의 행적을 남긴 책들은 많았다. 대개 ‘실기’(實記)라는 말이 붙어 있는 책들이다. 고려 후기 문신 안향의 후손들은 조선 영조 대인 18세기 중반에 안향의 행적을 담은 ‘회헌실기’를 간행했다. 조선의 개국공신 유창의 후손들도 조선 순조 때인 1826년에 자기 조상의 일대기를 쓴 ‘선암실기’를 만들었다.
특이하게도 자신의 실기를 스스로 쓴 사람도 있다. ‘스스로 쓴 실기’라는 뜻의 ‘자저실기’(自著實紀)를 남긴 심노숭이다. 조선 정조, 순조 때의 인물인 심노숭은 유명한 문신 가문의 일원이었지만 비주류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자저실기’는 현대적 의미의 자서전과 가장 유사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의 자서전처럼 심노숭의 자저실기는 ‘나는 누구인가’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외모를 묘사하기 전에 “어려서부터 몇 명의 화가를 거쳐 내 초상화를 그리게 했으나 하나도 닮은 것이 없었다”며 “그림으로 그려낼 수 없다면 글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썼다. 이어 그는 “몸은 깡마르고 허약하며 키는 보통 사람보다 작다. 등은 구부정하게 불룩 솟았고 배는 펑퍼짐하게 아래로 처졌다”며 자신의 생김새를 묘사한다.
자저실기의 대부분은 비주류 문관의 입장에서 정조, 순조 대의 세태를 묘사한 것이다. 특히 당시 여당이었던 노론 벽파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비판을 가했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혼담을 하러 온 사람이 내 모습을 보고 혼사를 물렸다. 요절할 관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급한 성격에 가차없이 주먹을 날렸다”, “감을 너무 좋아해서 50살 이후에 한 번에 60~70개나 먹었다”는 등 남에게 말하기 민망한 부분까지도 솔직히 드러냈다.
심노숭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에는 이옥, 이학규 등 문인들이 산문과 서한을 통해 자신의 생애를 남겼다. 문인들 사이에서 일기를 쓰는 문화도 확산됐다고 한다. 80만여자 분량에 이르는 심노숭의 ‘남천일기’는 조선 후기 개인이 남긴 일기 중 가장 분량이 많은 것으로 꼽힌다.
한문학자 김재욱 박사는 “조선 후기, 특히 18세기부터는 중국 소품(산문의 한 종류)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18세기 이후 문인들 사이에 자서전이나 일기가 유행한 이유를 설명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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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김형래가 인터뷰이로 참여한 것으로 백철 기자의 기사입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1405021655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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