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보름날 밤바람에 ‘연(鳶)’으로 액(厄)을 날려보내리
“해마다 정월 보름에는 수표교(手標橋) 개울 위아래로 연싸움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담을 쌓은 듯이 빽빽이 늘어선다.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끊어진 연줄을 쫓아 하늘만 쳐다보고 물결처럼 분주히 달리다 보면 담장을 뛰어넘고, 지붕 위를 마구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 기세를 막을 수 없으며 이를 보고 겁을 내고 놀라는 사람도 많다.”
_홍석모(洪錫謨, 1781~1857)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중
시니어 P씨는 북서풍이 불기 시작하는 초겨울이 되면 새록새록 추억이 담긴 웃음이 입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가 유독 찬 바람 부는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섣달에 생일이 있는 그는 겨울바람이 뺨을 스치는 계절이 되면 어린 시절 동구 밖을 뛰놀던 기억이 더욱 생생해지기 때문이다.
시니어 P씨 집에는 담양으로 시집간 이모가 보내준 죽 제품이 유독 많았다. 그는 집 창고에 있는 쓰다 만 대나무 광주리와 소쿠리로 숟가락 통이나 여치집을 만들곤 했다. 그중 특별히 그가 손재주를 발휘한 것은 ‘연 만들기’였다. 음력 11월인 동짓달부터 음력 정월 보름까지 장장 70여 일간 시니어 P씨는 연을 만들어 쌩쌩 부는 바람과 함께 하늘로 날려 보내는 일로 긴 겨울을 보냈다. 올겨울도 시니어 P씨는 8세 된 손자와 한강변에서 날릴 방패연과 가오리연을 만들기 위해 지난가을에 길이가 세 발쯤 되는 통대나무 20개를 구입해 베란다 그늘에서 말려놓았다.
연은 정월 세시 풍속의 마무리 투수
음력 정월은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계절이자 삼라만상이 봄을 향해 소리 없이 생동하기 시작하는 시기였기에 세시 풍속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 음력 정월의 대표적 세시 풍속일로는 설날, 입춘, 대보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정월 대보름에는 다채로운 놀이와 행사가 펼쳐졌다. 전통 사회에서 가장 즐겁고 재미있는 날은 오히려 설날보다 정월 대보름이었다. 설날은 새해 첫날로, ‘근신’과 ‘조심’을 화두로 하여 친족을 중심으로 한 세배, 차례, 덕담 등 가족 행사가 많은 반면, 정월 대보름은 ‘개방’과 ‘소통’의 날로서 마을과 고을 단위의 공동체 행사가 진행되다 보니 참여하는 사람도 많고, 놀이 규모나 범위도 커지기 마련이었다.
1849년 조선 순조 때 유학자 홍석모(洪錫謨)가 지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전국 각지의 세시 풍속과 관련한 내용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이 책에는 정월 대보름, 즉 상원(上元)에 하는 세시 풍속으로 연놀이, 연싸움, 달맞이, 다리밟기, 편싸움, 줄다리기, 놋다리밟기 등 수많은 놀이가 열거되어 있다. 그중 연날리기에 대한 내용의 일부를 인용한다.
‘아이들이 집안 식구대로 “○○○ △△生 身厄消滅”이라는 문구를 연 등에 써서 띄우다가 저물녘 액을 멀리 보낸다는 의미에서 연줄을 끊어 날아가게 한다. 연을 만드는 방법은 대나무 살에 종이를 발라 키 모양처럼 만든 다음 오색으로 칠하면 된다. 연 바탕에는 다양한 무늬를 넣는데, 그 무늬에 따라 바둑판 무늬를 넣은 기반연(碁斑鳶), 이마 부분에 검은 칠을 한 묵액연(墨額鳶), 접시처럼 둥근 모양의 쟁반연(錚盤鳶), 방패 모양의 방혁연(方革鳶), 고양이 눈을 그린 묘안연(猫眼鳶), 까치 날개 모양의 작령연(鵲翎鳶), 물고기 비늘 모양의 어린연(魚鱗鳶), 용 꼬리 모양의 용미연(龍尾鳶) 등으로 이름을 붙인다. 또 얼레[絲車]를 만들어 연줄을 붙들어맨 다음 공중에 띄워 바람 부는 대로 날리며 노는 것을 연날리기[風錚]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겨울부터 연을 날리지만, 정월 대보름이 지나면 연을 날리지 않는다.’
정월 대보름날 해 질 무렵 액을 멀리 보낸다는 의미로 연줄을 끊어 하늘로 날아가게 한다. 이처럼 연은 정월 세시 풍속의 마무리 역할을 했다.
연의 역사적 유래
우리나라 옛 문헌에 연이 나타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41권 ‘열전(列傳)-김유신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반란군을 평정하기 위해 연을 만들어 전략적으로 이용했다는 내용이다. 연놀이가 군사적으로 활용된 사례는 <동국세시기>에 나오는 고려 최영 장군의 일화에서도 전해진다. 고려 말엽(1374년) 최영 장군이 탐라(제주도)의 목호(몽골인으로 목축을 하는 사람)의 반란을 평정할 때 군대를 이끌고 탐라에 이르렀는데, 섬의 사방이 절벽이라 상륙할 수가 없었다. 장군은 묘안을 내어 연 밑에 갈대씨를 넣은 주머니를 달고, 그 연을 높이 띄워 섬 주변 가시밭에 주머니를 떨어뜨렸다. 그해 가을에 섬 주위는 마른 갈대로 뒤덮였고, 그 갈대에 불을 질러 일어난 혼란을 틈타 성을 점령했다. 조선조에서는 세종대왕(1455년) 때 남이 장군이 강화도에서 연을 날렸다는 기록과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섬과 육지를 연락하는 통신 수단이나 작전 지시의 방편으로 연을 이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당시 삼도 수군 통제사로 충무에 있던 이순신 장군은 왜적이 쳐들어올 때 흩어진 군사들의 집결지를 알리기 위해 연을 날렸다고 한다. 연의 무늬에 따라 명령이 달랐다. 예를 들면, 삼봉산의 문양이 있는 연(삼봉산연)을 날리면 모든 군사는 삼봉산에 모이라는 뜻이 된다. 특히 영조는 연날리기를 즐겨 구경하고 장려해 18세기 중반 이후 일반 백성에게도 연날리기가 널리 보급,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연은 이렇게 만든다
우리나라 연의 종류는 형태와 문양에 따라 분류되며, 그 종류가 100여 종에 이른다. 대표적인 연은 장방형의 중앙에 방구멍이 뚫려 있는 방패연이며, 그 밖에 주로 어린아이가 날리는 꼬리가 달린 가오리연과 사람·동물 등 만드는 사람의 창의성에 따른 입체적인 창작 연 등이 있다.
시니어 P씨 자신은 방패연을 만들고 손자는 가오리연을 만들기로 했다. 가오리연은 형태가 마름모꼴인 가오리를 닳았다 해서 그렇게 불린다. 가오리연의 특징은 방구멍 없이 꼬리를 길게 붙여 바람이 꼬리를 타고 흐르게 해 연을 쉽게 띄울 수 있다는 것.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고, 전지 정도의 크기가 넉넉한 한지와 대나무, 실패와 무명실, 풀 그리고 문구용 칼만 있으면 된다. 방패연과 가오리연 만드는 방법과 준비물을 살펴보자.
방패연 만들기
준비물 한지(가로 30cm, 세로 45cm), 머릿살(길이 31cm, 굵은 대나무) 1개, 장살(길이 54cm, 중간 굵기의 대나무) 2개, 중살(길이 44cm, 중간 굵기의 대나무) 1개, 허릿살(길이 31cm, 제일 가느다란 대나무, 허릿살이 세면 연이 날지 않으니 최대한 가는 걸로 준비한다) 1개, 컴퍼스와 연필, 60cm 자, 송곳, 접착제, 실, 얼레
만드는 법
1) 종이를 물에 축여 다림질해 질기게 만든 다음 가로 세로 2:3의 비율로 자른다. 보통 연 크기는 가로 40cm, 세로 60cm 정도다.
2) 재단한 종이는 맨 윗부분에 머릿살을 싸서 접을 만큼 여분(2~3cm)을 두고 한가운데를 둥글게 오려내 방구멍(바람 구멍)을 낸다.
3) 잘 마른 댓가지를 얇게 다듬어 뼈대(머릿살은 다섯 뼈대 중 가장 실하게, 허릿살은 가장 가늘고 약하게, 중살과 장살은 중간 굵기)를 만든다. 종이 맨 위 여분 밑으로 머릿살을 붙인 다음, 나머지 뼈대를 방구멍 중심점에 교차시켜 허릿살→중살→장살 순으로 댓살 안쪽에 풀칠해서 붙인다. 머릿살 양쪽 끝과 장살 위쪽 끝은 활벌이줄을 매기 쉽도록 약간 튀어나오게 한다.
4) 맨 위 여분 종이로 머릿살을 싸서 바른다. 뒤집어서 앞면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자를 써넣고 꼬리나 발을 달아 장식한다.
5) 연 위쪽 머릿살과 장살이 겹쳐진 양쪽 끝을 20도가량 휘게 활벌이줄을 맨다. 나머지 살이 앞으로 15도가량 휘어야 연이 잘 뜬다. 나머지 윗줄, 가운뎃줄, 아랫줄을 맨 다음 네 가닥을 한곳에서 묶어 목줄을 만들고 그 끝에 연줄을 연결한다. 윗줄은 A, B 각 지점에서 꽁숫구멍까지, 가운뎃줄은 방구멍 중앙에서 윗줄, 아랫줄을 위로 당겼을 때 팽팽하게 되도록, 아랫줄은 꽁숫구멍에서 A나 B까지, 꽁숫구멍은 방구멍 중앙과 연 하단 중간에서 조금 내린 지점에 연결한다.
가오리연 만들기
준비물 장방형 한지(가로·세로, 각 31cm), 댓살(0.5×44cm) 2개, 꼬리 종이,
접착제, 실, 얼레
만드는 법
1) 종이를 정방형이나 마름모로 자르고, 뒷면 가운데에 중살을 붙인 다음, 허릿살을 양쪽 모서리 끝으로 휘어서 댓살을 세운 채로 붙이고, 모서리 종이로 싸바른다. 종이와 댓살 사이가 뜨는 곳은 풀을 바른 종이 조각을 붙인다. 뼈대 붙이기가 끝나면 앞면을 색칠하거나 색종이를 오려 붙여 장식한다.
2) 아래꼬리는 너비 5cm의 긴 종이 끝을 가위질해 앞면에서 붙이되 귀 꼬리는 20~30cm, 아래 꼬리는 길이 2m로 한다. 바람이 꼬리를 타고 흘러 연의 균형을 잡아준다.
3) 윗줄은 중살과 허릿살이 교차되는 지점에 댓살과 함께 묶고, 아랫줄은 위 꼭지에서 윗줄 묶은 만큼 간격을 아래 꼭지에서 띄워 묶어준다. 줄 길이는 위아래 줄의 가운데를 잡고 위 꼭지와 아래 꼭지에 닿는 길이로 하되 아랫줄이 조금 긴 상태에서 목줄을 묶는다.
연을 날리기 위해서는 강변 등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시니어 P씨는 정월 보름날 액막이의 민속과 관련시켜 연을 날려 보냄으로써 연날리기를 끝내려고 한다. 연을 날리려면 넓은 공간과 초속 3~5m 바람이 불어야 한다. 이때 바람을 등지고 서서 시니어는 얼레를 잡고 손주는 연을 잡은
뒤 연줄을 20~30m쯤 풀어 연을 잡은 사람이 바람의 리듬을 타도록 연을 올려주면 쉽게 뜰 것이다.
시니어 P씨는 손주와 함께 연을 날리려는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라이너스가 부른 노래 ‘연’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동네 꼬마 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 언덕 위에 모여서 할아버지께서 만들어주신 연을 날리고 있네 꼬리를 흔들며 하늘을 날으는 예쁜 꼬마 연들이….”
글 김형래(시니어 칼럼니스트·시니어파트너즈 상무, <어느 날 갑자기 포스트부머가 되었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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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김형래가 작성한 것으로 국민은행에서 발행하는 GOLD&WISE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omoney.kbstar.com/quics?page=C017651
‘KB은퇴·노후 설계 Master’ 선정
KB국민은행은 지난 2012년부터 0세에서 100세까지 전 생애에 걸친 맞춤형 노후 설계 서비스인 ‘KB골든라이프’를 시행하며 고객 인생 전반의 노후 준비를 지원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은행 내부적으로 은퇴·노후 설계에 대한 직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은행 자체 연수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한 직원 30명을 ‘KB 은퇴·노후 설계 마스터(Master)’로 선정, 인증패를 수여했다. 은퇴·노후 설계 마스터는 전문적인 지식과 견해는 물론, 고객별 맞춤 방안을 제시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재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자긍심과 책임감을 갖고 노후 설계에 대한 전문 상담이 필요한 고객에게 차별화된 은퇴·노후 설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직원 간 고객 상담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다. 앞으로도 KB국민은행은 고객이 어느 지점을 방문하더라도 전문적·종합적인 노후 설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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