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늦가을 며느리에게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치시는 시어머니의 비결을 잠시 지켜봤던 적이 있다. ‘배추를 절이는데 소금을 얼마큼 넣어야 하는가?’가 며느리가 전수받아야 할 핵심이었다. 며느리는 눈금이 총총히 새겨진 계량컵과 메모지, 연필을 단단히 챙기고 옆에 앉아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지켜보고 있다. 배추를 잘 절여야 나중에 양념이 잘 배고, 먹는 느낌도 적당해서 반찬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중요 단계이다.
배추를 절이는 순서는 생략하고 며느리의 메모장에 남은 비결은 이랬다. 다섯 포기의 김치를 절이는 데 필요한 소금은 800그램, 그리고 물은 8리터, 20여 년 시집살이하면서 한 대접 두 바가지 세 대접 그리고 눈대중으로 배워왔지만 따라갈 수 없는 감각에 실패를 거듭했었기에 작심하고 문서로 남기려고 덤빈 것이다. 며칠 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경험이 담긴 맛있는 김치를 마주했다. 그리고 며느리의 수첩에는 지금까지 암묵지로 전수되어 시행착오를 수차례 겪었지만, 문자와 계량으로 정리된 형식지로 비결을 전수받게 됨을 더 없이 다행으로 생각되는 벅찬 순간을 맞았다. 이 얘기는 우리 집에 있었던 일이다. 아마도 물과 소금의 일정 비율의 배합에 맞추는 배추 절이는 법은 손녀에게도 무사히 전수될 것이다.
<시니어의 지혜나 경험이 불꽃같이 사라지지 않고 내내 남는 콘텐츠 형태로 바뀌길 바란다>
지금까지 시니어의 경험은 대체로 눈대중이나 말로 전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렇게 암묵지로 전수되는 정보는 비밀을 유지하거나 특정 전수자에게만 전달하는 차원에서 또는 귀찮거나 글로 적거나 기록하는 방법적 기술이 부족한 경우에는 유효했던 방식이다. 그러나 스승의 열의나 감각이 제자와 같을 때는 완벽하게 이루어지지만, 전수 확률도 점차 낮아지고, 소실되는 경우가 많이 생긴 것을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하였다. 가장 큰 이유는 시행착오를 줄이자는 것이다. 꼭 당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눈감고 모른 체하지 말자는 것이다. 발명된 둥근 바퀴가 있는데 또 네모부터 육각형, 팔각형을 거쳐 원형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지혜와 경험이 글과 사진, 소리와 영상으로 남아서 손실과 변형 없이 전달될 수 있는 것이 바로 형식지라고 할 수 있다. 콘텐츠가 바로 형식지다.
이 콘텐츠는 바로 창조경제 시스템의 인프라를 구성하는 요소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음악 창작뿐 아니라 많은 저작권이 창조 경제 시스템을 만드는데 기본적인 인프라’이며 ‘남의 물건만 훔치는 게 도둑질이 아니라 저작권을 가져가는 것도 부도덕한 일이라는 인식 아래 보호장치를 마련하라.’라는 지시 내용이 언론을 통해서 보도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더욱 강력한 저작권 보호 대책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이런 정부의 정책 방향이 때문인지는 모르겠느냐 저작권에 대한 문의가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앞으로는 지혜와 경험이 제대로 가치로서의 효용성을 인정받고 제값을 찾아가는 일들이 정당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형식지로 전달되는 편리성과 완벽성을 가진 콘텐츠는 아주 취약한 부분이 있다. 바로 복제와 모사가 쉽다는 것이다. 이러한 단점은 기술적 진보나 법적 처벌만으로는 불가능하고, 문화적 양식과 도덕적 양심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시니어 누구에게나 대하소설 몇 편을 쓰고도 남을 경험과 태산을 깎아내고 바다를 메울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니 남의 것을 탐하거나 인용하기보다는 자신의 암묵지를 형식 지로 바꾸는데에도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시니어가 저작권을 가져가는 부도덕한 일은 흔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암묵지를 형식지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도와드리는 것이 모든 국민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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