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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Lifestyle

"그들의 환상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by Retireconomist 2012. 1. 26.
파리 시청앞 거리에서 젊은 남녀 한 쌍이 격정적인 키스를 하는 로베르 두아노(Doisneau, Robert, 1912~1994.4.1)의 사진. '시청 앞에서의 키스(Kiss by the Hotel de Ville,1950)'의 원본 사진이 프랑스의 최고급 경매장 중 하나인 Artcurial Briest-Poulain-Le Fur에 출품돼 15만 5,000유로, 약 2억원에 최종 낙찰됐다는 소식이 있었다.

[Robert Doisneau Kiss by the Hotel de Ville. 1950]

이 사진이 촬영된 것은 1950년.  이 사진은 1950년 라이프(Life)지에 실리기도 했고 포스터와 엽서로 제작돼 공식적으로 40만장 이상이 팔렸으며 전 세계 대학 캠퍼스 기숙사 방마다 이 사진이 걸렸을 정도로 낭만적 '키스'의 대표적 이미지였다. 원본 사진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비록 지금은 75세의 할머니가 되었지만 사진 속의 여인 프랑수아즈 보르네였다. 보르네는 당시 자기와 같이 연극을 공부하던 남자친구가 그 주인공이었으며 "작가가 우리가 재학 중이던 학교 근처에서 우리를 발견했고 포즈를 취해달라는 그의 요청에 동의했다"며 사진의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사진을 찍은  며칠 뒤 두아노가 직접 사인한 이 원본 사진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시청앞에서의 키스' 속의 여인 프랑수아즈 보르네. ]

사진 속의 남자 주인공 자크 카르토와는 만남은 오래 가지 못했고 카르토는 현재 포도주 제조업자가 되었다고 한다. '시청앞에서의 키스'는 <라이프>에 실린 이후 잊혀져 있다가 1986년 포스터로 제작되어 화려하게 컴백한다. 사진이 유명해지자 사진이 촬영된 지 40여년이 지난 1993년, "그 입맞춤의 주인공이 바로 나였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키스 장면을 두아노가 찍어 초상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수 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고 사진 판매 수입도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수아즈 보르네도 청구인 중의 한 명이었으나 프랑스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모두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두아노는 재판 과정에서 이들에게 결코 "주인공이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의 환상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 사진은 소송에 휘말리며 더욱 유명세를 얻었으나 사진의 연출을 둘러싸고 다시 한 번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사진비평가 수잔 손탁은 그녀의 책 <타인의 고통>에서  "연출됐던 그토록 많은 사진들이 그 순수하지 못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증거가 되어버렸다"고 일련의 연출 사진들을 비판한다. "특히 (사진이) 연출됐다는 사실에 우리가 적잖이 당황하게 되는 사진들은 개인이 겪는 가장 최고의 순간, 특히 사랑과 죽음을 기록한 듯이 보이는 사진들이다.1950년 '라이프'지에 실린 젊은 남녀 한쌍이 파리 시청 근처의 보도에서 입을 맞추고 있는 사진이 일종의 순간 포착이었다고 명확하게 주장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40년이 지난뒤 일당을 받고 고용된 한 쌍의 남녀가 두아노의 지휘 아래 입을 맞췄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 사진이야말로 고이 간직해야 할 사랑과 낭만이 넘치는 파리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사람들은 사진작가가 사랑과 죽음이 펼쳐지는 장소를 드나드는 스파이가 되어주기를, 그리고 사진에 찍힐 인물들이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방심 속에서" 사진작가에게 찍히기를 바랬던 것이다.

낭만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성립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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