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의 일이다. 어느 봄의 끝자락에 예정에 없던 꽤 비싼 공연 입장권을 두 장 샀다. 공연을 자주 보는 편이 아니지만, 문득 젊은 시절의 낭만을 채워주던‘ㅇ’가수의 공연 광고를 보고 결심한 것이다. 가슴속 한가운데를 젊은 날의 낭만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그래서 값도 생각하지 않고 예매를 서둘렀다.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 3개월 동안 가끔 마음은 공연장을 향했고, 평소보다 자주 그 가수의 노래를 듣곤 했다. 공연이 열리던 날 일찌감치 예약된 자리에 앉으니 내가 가수인 것처럼 기분이 좋아서 입술이 바싹 마르며 긴장되기도 했다. 예상대로 공연은 압권이었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악기와 조화를 이룬 가수의 노랫소리는 가난한 내 낭만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예정된 마지막 노래가 끝나자 거의 모든 관객은 박수로는 부족해 발까지 구르면서 큰 목소리로“앙코르”를 외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가수도 점점 커지는“앙코르”외침에 연신 감사 인사를 하며 서너 곡을 더 부르고 나서야 무대를 떠났다. 그날 끝에 들었 던“앙코르”는 관객에게는 프로그램에 없던 보너스였고, 그 가수를 인간성 좋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멋진 노래 뒤를 따르는‘앙코르’. 앙코르는 속성상 시작 전에 터져 나오는 일은 절대 없다. 그 가수가“앙코르”를 외치는 소리를 듣고는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무대에 섰을 때 관객은 더큰 감동을 받은 것이다. 프로그램에 있는 노래만 부르고 무대를 내려갔다면 가수의 뒷모습은얼마나 야박해 보였을까?
시니어라면‘앙코르’를 외치는 주니어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퇴직 후 새롭게 전개되는 인생의 길목에 서서 일하지 않는 즐거움에만 빠져 있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즐거울 수 있을까. ‘앙코르 시니어’는 인생의 전반부를 통해서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거치고 험한 실전을 겪으면서 쌓아온 지혜를 바탕으로 제2의 인생을 통해 내 인생을 의미 있게 가꾸는 데 열정을 다하는 이를 가리킨다.
의 미 있 는 인 생 제 2 막 을 열 다
‘앙코르 커리어’란 적더라도 지속적인 수입원이 있고, 개인적인 의미를 추구할 수 있으며, 사회적 영향력도 어느 정도 확보한 3박자를 갖추고 인생 후반기에 일하는 이를 말한다. ‘ 앙코르 시니어’를 발굴하고 육성한 미국의 사회적 기업‘시빅 벤처스(Civic Ventures)’의 설립자인 마크 프리먼(Marc Freeman)이 주창한 것으로, 그는 1998년 회사를 설립한 후‘경험 봉사단(Experience Corps)’을 창설했다. 50세가 넘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해 사회적 혁신을 이룬 사람들을 찾아서 널리 알리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인‘성취상(Purpose Prize)’도 수여해왔다. 바로‘앙코르 커리어’를 육성하고 고양하는 일을 해온 것이다. 시작의 배경은 좋은 학습 기회와 넓은 사회 활동으로 새로운 시대를 이끈‘베이비 부머’의 은퇴를 바라보면서 그들의 훌륭한 역량을 더욱 쓸모 있게 활용하자는 것. 그래서 비영리 법인을 설립하고 시니어 각자가‘앙코르’할 수 있는 재능을 찾아주고 그것을 활용하는 일자리로 연결해주는 일을 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젊은이에게 없는 지식과 에너지와 재능 그리고 시간을 잘 활용한다면 인생 후반기는 더없이 의미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일하는 것만으로‘앙코르 시니어’가 될 수 있을까? 교단에서 평생 봉직하고 정년 은퇴한 교장 선생님이 아파트 경비원이 되어 아파트의 안녕을 위해 일하는 것보다, 학생을 가르치고 학사 행정을 이끌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방과후 학교를 통해서 맞벌이 자녀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일을 하든가, 학습에만 관심을 둔 세태로 말미암아 사회 예절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예법을 가르쳐주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보다 더‘앙코르 커리어’에 접근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인 류 를 위 한 봉 사 , 워 킹 홀 리 데 이 와 지 구 감 시 단
그런데 과연‘앙코르’를 받았다고 자신의 능력을 펼칠 만한‘무대’가 있을까?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길이 있다.‘ 워킹 홀리데이(Working Holiday)’라는 프로그램을 보자. 본래는 30세 미만의 젊은이들이 외국 여행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와 유사하게 경력을 활용하며 인류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외국 원조 사업에 동참하는 일을 통해‘워킹 홀리데이’를 경험할 수 있다. 외교통상부 산하‘한국국제협력단(www.koica.go.kr)’에서는 우리나라의 각 분야 전문가를 일정 기간 개발도상국에 파견해 우리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과 경험, 전문 지식을 현장 기술 지도, 세미나, 정책 자문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전수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시니어 봉사단원은 만 50세 이상으로 지원 직종 경력이 10년 이상인 경우에 한하는데, 일반 봉사단원에 비해 현지 생활비는 2배, 주거비는 1.5배가 지급된다. 해외 봉사에 따른 위험에 대비해 재해보상제도가 마련되어 있고, 귀국한 뒤 취업 지원을 위한 취업정보센터도 운영되고 있으며, 귀국 후에도 한국봉사단원연 합회(www.kova.org)를 통해서 봉사에 참여한 단원들과 교분을 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해외 자원봉사는 일반 여행과 달리 사전에 공부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므로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매월 셋째 주 금요일마다 공개되는 한국국제협력단의 구체적인 사업 내용과 현장 체험담을 들을 수도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참여해본다.
좀 더 큰 관점에서 인류를 위한 봉사는 어떨까?‘워킹 홀리데이’는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이지만, 돈을내고일자리를얻는경우도있다. 이른바‘지구감시단(www.earthwatch.org)’이바로그런곳이다. 지구감시단은1971년미국에서설립된비영리단체로 미국과 영국, 호주와 일본에 각각 사무실을 두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연구 참가자들을통해서재원을조달한다는점이다. 따라서 특정 기능과 기술이 있거나 경험이 많고 기부를 많이 할수록 참여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돈을 내면서까지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할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지구 환경 보전이라는 큰 성취감을 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지원하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벌써‘2012년 감시단’을 모집 중이다. 하나는 1~3월에 멕시코 만의 기름 유출로 말미암은 피해를 평가하고 아이코닉 해조를 보호하는 일, 그리고 프랑스의 알프스 지역에서 5~7월에 포유류 집단에 대한 행동을 관찰하는 일, 또 하나는 6~8월에 미국 텍사스 주에서 공룡 화석을 발굴하는 일 등이 예정되어 있다. 가족이나 동문이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신청은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New for 2012’ 를클릭한뒤, 양식에맞춰신청서를작성하거나, 전화로도가능하다. 지난1971년에 설립된 단체이기에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높고 활동 범위도 전 세계에 걸쳐서 진행되어 나에게‘앙코르’기회라고 생각하면 문을 두드릴 만하다. 이외에 야생 동물 보호활동도 있다. 관광 회사의 상품을 통하지 않고 관광객 입장에서 동물을 관찰할 수 있는 길이 있지만, 봉사자로 참여해 세계 곳곳에 가서 야생 동물을 살펴볼 기회를 제공하는‘야생동물관찰하기(seethewild.org)’라는단체가그런경우다.
남들이 만든 일자리보다는 내가 보다 주도적으로 비영리 민간단체(Non-Profit Organization, NPO)를 만들어 이끄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런 단체를 만들고 제대로 운영하려면 공감할 수 있는 존재 이유가 분명하고, 그것을 달성하려는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 한국 NPO 공동회의(www.npokorea.kr)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 등록된 비영리 민간단체의 수는 9,182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국제연합의 경제사회이사회(UN ECOSOC)에 등록된 한국 NGO는 27개다.
이곳 역시‘앙코르’를 외치며 시니어를 반기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도 급속한 경제 발전과 함께 원조국이 되었고, 그 선진 원조를 추진하기 위해 경륜 있는‘시니어’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우리의 경제 성장을 이끈 경험을 원조국 지위에서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살리는 것,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 이 차 별 없 는 직 업 , 케 어 기 버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봉사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젊은 시절에 남을 위해 희생하는 직업을 꿈꾼 적이 있다면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비슷한 직업이 바로‘케어기버(Care Giver)’다‘. 도움을 드리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케어기버는 세계적인 비의료 홈케어 서비스 제공자인 홈인스테드 시니어케어(www.homeinstead.com) 소속으로,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을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돌보는 전문가를 지칭하는 말이다.
나이 제한 없이 취업해 급여를 받을 수 있고, 어르신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홈인스테드 시니어케어에서 직접 채용하는데, 단순한 직업소개가 아닌 여러 단계의 철저한 인성 검증 단계를 거쳐서 인재를 채용한 후, 16년이 넘는 돌봄 사례의 노하우가 담긴 교육 프로그램으로 기본 필수 교육 및 전문 교육을 실시한다. 이곳의 한국 법인 홈인스테드 코리아(www.homeinstead.co.kr)는 이를 바탕으로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케어기버’에게 퇴직 시까지 훈련하며, 고객 맞춤형으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놀랍게도‘케어기버’의 평균 연령은 55세. 자식들 양육을 마무리한 여유 있는 환경에서 불편한 어르신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베푸는 보람된 일을 하면서 나이 차별 없이 동등하게 직업인 대접을 받는 것으로는 비교할 필요도 없는 꿈의 직업이다. 직장 경험이 없는 전업주부에게도 얼마나 고귀한 삶의 기회인가. 학력과 경험이 풍부한 은퇴 세대의 급격한 증가와 함께 남은 인생이란 뜻의‘여생’이란 단어의 의미가 점차 퇴색되고 있다. 이를 대신해‘앙코르’에 귀 기울이며, 나 자신의 의미 있는 인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국가와 사회와 직장을 위해 충성을 다했다면, 이제는 나의 지혜와 경륜을 가지고 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고귀한 시간으로 활용할 때다.
“앙코르(한 번 더)”라고 세상이 나를 부를 때“커리어(경륜)”로 답하자. 그래서‘앙코르 커리어’를 갖추고 멋진 인생의 제2막을 열어보자.
글 김형래(시니어 칼럼니스트·시니어 파트너즈 상무, <나는 치사(致仕)하게 은퇴하고 싶다>의 저자) 사진 김재이 어시스턴트 이승헌
50세 이상 시니어가 주축이 되어 활동 중인 회원 240명의역사클럽‘일조의궁궐’(http://club.your stage.com/pkmj4579)을 이끌고 있는 L 회장은곧 7학년이 된다. 국내 굴지의 화장품 회사에서 상품기획부장으로 근무하던 그는 늘 새로운 화장품을 개발하는 데 골몰했다고 한다. 그는 어느날 경복궁 앞을 지나면서 문뜩‘왕비는 어떤 화장품을 썼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때부터 역사 관련 책을 섭렵하기 시작했고, 왕비가 쓰던 화장품의 비법과 그에 사용된 원료를 현대 화장품에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이른바‘한방 화장품’. 그는 역사 공부를 통해서 화장품의 새로운 역사를 쓴 것이다.
퇴직 후 그는 재직 시절 못다 한 우리 역사 공부에 빠져 도서관에서 책을 찾고 신간 서적을 사보면서 깊이를 더해갔다. 그러던 중 자신의 블로그에 우리 역사에 대한 얘기를 올려놓기 시작했고, 역사에 관심 있는 블로거의 방문이 점차 늘어갔다. 우선 그는 그가 정리한 역사를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자료를 공유하는 차원에서 클럽을 개설했다. 클럽을 처음 만든 때는 2010년 4월. 역사 강좌를 개설해달라는 클럽 회원들의‘앙코르’가 쏟아졌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뒤 역사 강좌를 시작했다‘. 궁궐 탐방’과‘역사 강좌’를 한 달에 한 차례씩 번갈아 진행하면서 지난 10월에는 33번째 강좌가 진행되었다.
L 회장이 최근 진행한 역사 강좌는‘조선 임금의 국장과 왕릉 조형’. 이 자리에서 그는 궁궐 탐방을 넘어서서 박물관 순례를 더할 예정이라는 클럽 활동의 확대 개편안까지 발표했다. 그의 활동에 감복을 받은 회원들이 자청해서 역사 강좌에 집중하도록 현장 탐방과 회원 관리를 지원하기로 나섰기 때문이다. 현재 L 회장의 명함에는‘역사 칼럼니스트’와‘민간 사학자’라는 명칭이 새겨져 있다. 그가 매주 강의에 나서는 곳은 줄잡아 서너 곳. 그가 활동하는 곳은 노인복지회관을 비롯한, 역사 클럽‘궁궐 이야기’까지 10여 곳에 이른다. 그는‘앙코르’하는 소리를‘커리어’라는 답으로 받았다. L 회장은‘앙코르 시니어’로서 제2 의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
본 칼럼은 김형래가 작성한 것으로
국민은행 VIP 고객을 위해 만들어진 Gold and Wise 11월호에 게재된 글임
국민은행 사보 연결 사이트 https://omoney.kbstar.com/quics?page=C017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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