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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Lifestyle/매일Daily

아내의 퇴임사

by Retireconomist 2019. 12. 25.

12,330
제가 농협에 입사해서 퇴직까지 근무한 날을 세어보니 12,330일이 되더군요. 
햇수로 따져보니 33년 10개월 3일. 
'예수'께서 세상에서 오셔서 살았던 기간입니다. 
어쩌면 한 사람의 짧은 인생의 평생 같은 기간 동안 농협에서 일을 한 셈입니다. 

저에게 그 12,330일은 늘 새로운 날이었습니다. 

출근길 잠을 깨우며 싸하게 코끝을 때리는 쨍한 차가운 공기
아침 햇살에 이슬이 부서지면서 흩어지는 신선한 습기
중천에 떠서 허기진 발걸음을 재촉하던 쨍하게 울리던 따뜻한 온기
사각사각 돈세는 소리, 계수기와 키보드의 기계음, 고객 호출신호음 그리고 쉴사이 없이 오가던 대화
해질 무렵 마감을 재촉할 때 방끗 웃는 노을의 포근한 느낌
휴식을 허락받은 퇴근길의 또각 또각 나의 발자국 소리

물론 때로는 힘들었고 때로는 즐거웠지만, 
그 어느 하루, 다시 돌아보면 새롭고 설레고 빛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아주 짧은 하루 하루를 보냈고,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을 했었고, 
대단하지 않은 일을 맡았었고, 
엄청난 성과를 이루지는 않았지만, 
그 일상마저 접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간 쌓인 12,330일 33년 10개월 3일보다.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퇴직 후의 막연한 미래보다  
정말 하찮게 지났던 오늘 하루가 가장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이제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 농협에서의 생활은 때론 힘들고 때론 즐거웠습니다.  
그럼에도 농협에서 일했었기에 좋았습니다. 

어떤 어제는 너무 너무 행복했고, 어떤 어제는 지우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막연한 내일에 불안해 하지 말고,
오늘, 오늘을 잘 딛고 음미하시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오늘을 대단하고 아름답게, 오늘을 빛나고 눈부시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엄마이고, 누구의 아빠이고, 언니였고, 형이었고, 동생이었고, 딸이었고, 남편이거나 아내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여러분은 오늘을 눈부시게 살아갈 자격이 있습니다. 

눈부신 여러분의 오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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